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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2-16 04:23
북한 여군 병영수기, "일당백 목욕을 아시나요?"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9,480  
북한여군들의 병영생활 

병영이라 함은 군대가 집단적으로 거처하는 ‘집’을 말한다. 즉 병사들이 추위와 더위, 비바람 따위를 막고 그 속에 들어가 살기 위하여 지은 건물을 뜻하고 있다. 

어느 나라나 국가의 안전보장과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군 집단이 존재하고 있으며 이들이 전투를 수행할 수 있도록 교육받고 훈련되는 곳이 곧 병영이다. 

이런 병영을 군인들의 ‘집’이라고 한다면 그곳에서 생활하는 군인들이 어떤 생활환경을 갖추고 있는가에 따라 전투력 등이 좌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인구대비 세계 1위의 병력을 자랑하는 북한, 4차에 걸친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을 통해 내적으로는 체제 안정을 다지고, 다른 한편으로는 국제사회의 원칙과 기준에 심각하게 도전하고 있는 북한군의 병영생활은 과연 어떨까.

전군을 강타한 '옴' 

1996년 봄, 북한군 전체에 비상이 걸렸다. 이른바 정세에 따른 비상이 아니라 전 군으로 확산되고 있는 피부병 때문이었다. 

어떤 경로를 거쳐 침습했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중대를 단위로 한 모든 병실(막사)에 옴이라고 하는 피부병이 돌기 시작했고 누구로부터 시작되었는지를 따지기도 전에 막사안의 전체 군인들을 옴쟁이로 만들어 버렸다. 

필자도 그때 처음 알았지만, 옴이란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진드기에 의해 생기는 피부병으로 신체접촉 등을 통해 전염되는 전염성 감염질환이었고 감염속도는 상상을 초월할 만큼 어마 어마한 것이었다. 

중대장과 중대정치지도원을 쓰러뜨리는가 싶더니 일주일도 채 못된 사이에 하사관 전체와 갓 입대한 신참마저 옴쟁이로 만들어 버렸다. 

가장 손쉽게 감염되는 곳이 손이나 팔, 겨드랑이와 생식기라고 하더니 어느 날 부터인가 남군 여군 할 것 없이 바지주머니에 손을 찌른 채 사타구니를 긁어대는 진풍경마저 펼쳐졌다. 

밤에는 특히 가려움이 심해져 잠을 이룰 수 없을 정도의 고통이 수반되고, 피부를 긁고 자극을 가해 2차 감염이 일어난다면 농창과 종기 등의 질환으로 끝임 없이 ‘진화’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당장의 괴로움에서 해방되기를 원했던 군인들은 강냉이 송치 등에 나무꼬챙이를 끼워 간지러워지는 피부를 긁고 또 긁어대고 있었다. 

밤마다 막사에서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가려움과 사투를 벌이는 군인들의 신음소리가 새어나왔으며, 아침에 서로 얼굴을 마주하면 서로가 자신들의 상처를 보여주는 것으로 서로를 위로하고 있었다. 정말이지 그 땐 그 이상의 위로가 없어보였다. 

그 와중에도 지휘관들의 우선 관심을 돌려야 했던 군인들이 있었다. 내가 속해있던 중대에서 영양실조 환자가 여섯 명이나 있었는데 옴이라는 이 전염병이, 핏줄만 앙상하게 드러나 있던 이들을 먼저 공략하는 듯 했다. 

머리조차 쳐들 힘이 없던 이들의 가는 앙상하게 드러난 갈비뼈 사이를 무지막지하게 파고들던 옴, 그들에게 유일한 보약이고 치료방법이던 햇볕 쪼이기마저 할 수 없을 만큼 스멀스멀 기어오르던 가려움의 고통... 

이런 고통을 가셔내기 위한 ‘전투’가 벌어졌지만 군인들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다만 모포를 세탁하고 햇볕에 건조시키는 것이었는데 매일처럼 빨래를 하고 건조를 시켜도 오히려 감염의 속도를 재촉하는 듯 했다. 

하루 일과가 긁는 것이었고, 긁다가 끝나는 게 당시의 일과였다. 필자가 속해있던 부대는 혼성부대여서 남성군인과 여성군인들이 서로를 의식 할만도 한데 도대체가 체면 따위를 생각할 겨를이 없어보였다. 

하루는, 이런 일도 있었다. 마침 대열검열 시간이어서 전 부대가 도열했고 그 앞으로 결속소 소장(중령)이 걸어 나오는데 자세가 영 말이 아니었다. 그렇게 나와서는 부소장의 대열보고도 받지 못한 채 다짜고짜 주머니에 손을 찌르고 사타구니를 긁어대는 것이었다. 

폼 나게 영접 보고를 받고 전 대원들 앞에서 일장 훈시를 하는 게 정석이었지만 그날만큼은 ‘긁는 시범’을 보여주기 위해 일부러 대원들을 불러 세운 듯 했다. 처녀군관들까지 포함해 60여명의 여군들이 도열한 앞에서 무슨 긁음의 시범을 보여주는 듯 안간힘을 다 쓰고 있는 것 아닌가. 

그래도 지휘관이 앞에 있으니 그 순간만큼은 ‘간지러워도 참아야 한다’를 열 백번 부르짖던 병사들이었지만, 호주머니 속에서 부지런히 움직이는 지휘관의 손을 의식한 순간부터 너나없이 긁고 싶은 유혹에 빠져버렸고 유혹을 이기지 못한 손들을 주머니에 쑤셔 넣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가려움을 이겨낸 자그마한 탄성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는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시원함에서 비롯된 웃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다시 지휘관을 의식하고 웃음을 거두는 대원들을 바라보던 그 지휘관의 이야기가 지금도 귀에 쟁쟁하다. 

“지금은 무력부 적으로 옴이야” 

대책 없는 북한군의 위생상태 

무력부적이라 함은 한국의 국방부를 일컫는 말로 당시 북한에서 전 군적으로 가려움과의 전투를 치르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하지만 막사 내 옴 병은 불결하기 짝이 없는 북한군의 위생상태를 고발이라도 하듯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부대단위로 해결하라’는 총참모부의 전신지시만 연발시켰다. 

상부로부터 매일같이 닦달을 받게 된 중대 급 간부들은 ‘없는 의약품’ 대신 민간요법에 기대를 걸어보기로 했고, 드디어 ‘유황에 돼지기름을 섞어 바르면 옴이 낳는다’는 비책도 알아버렸다. 하지만 돼지기름을 얻기가 쉽지 않았다. 유황은 농장에 나가면 구할 수 있었지만 먹고 죽을 돼지도 없는데, 몸에 바를 돼지기름을 어디서 구한단 말인가. 

소대와 중대마다 ‘돼지기름 구하기조’가 구성 되고 내무반생활을 접은 그들은 여기저기 민간인마을로 돌아다니며 돼지기름을 수배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사발 정도의 돼지 구름이 어렵게 구해지기도 했지만 전 중대원들이 바르기엔 턱없이 부족했고 그나마 돼지기름은 구하는 족 족 지휘관들의 차지가 되어 버렸다. 

이렇게 되자 군인들은 ‘우리가 언제 비단이불을 덮고 살았냐’며 돼지기름 대신 맨 물에 유황을 타서 몸에 바르기 시작했고 그로 인한 후유증에 또 시달리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날 누구의 ‘발기’인지 ‘유황에 돼지기름’대신 ‘유황에 석회를 끓여 바르면 된다’는 이야기가 나왔고, 대원들은 중대의 목욕 가마에 유황과 석회를 넣고 끓여대기 시작했다. 한 시간쯤 지나자 시뻘겋게 우러나온 비장의 ‘약’이 나왔고, 군인들은 보물처럼 그 시뻘건 물을 몸에 바르기 시작했다. 

그것도 그냥 바른 것이 아니라 ‘전염성 진드기가 피부를 파고들었으니 피부가 벗겨질 만큼 깊숙이 바르라’는 명령 하에 칫솔에 ’약‘을 발라 피부가 벗겨질 만큼 발라댔으니 그 고통 또한 이만저만이 아니었음을 밝혀두고 싶다. 

여하튼 그해 가을, 전군을 강타한 옴 병은 진정국면에 접어들었고 군인 모두가 사타구니를 주무르던 망신스러운 사태도 서서히 막을 내리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대한민국에 와서, ‘옴이란 비문화적인 위생환경에서 비롯된 전염병’이란 걸 알았고 그런 전염병이 돌 때는 세탁도 함께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당백 목욕’을 아시나요? 

비문화적인 위생환경이란 말이 나온 김에 현재도 북한의 여군들이 주로 하고 있는 ‘일당백 목욕’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원래 일당백이란 한사람이 백을 당한다는 말로 김일성, 김정일, 인제는 김정은 마저 쓰고 있는 저들만의 대명사이다. 

김일성 때 군인들에게 강조됐고 김정일 때도 강조됐으며 오늘날, 이른바 선군정치를 펴고 있는 북한에서 군인들이 입에 달고 사는 그 말 ‘일당백’. 김일성은 동부전선의 어느 중대를 찾아가서 ‘일당백 중대’가 되라고 격려했고 김정일은 다박솔 초소의 ‘일당백 여성군인들’을 자랑했으며 김정은은 청천강발전소 건설장에서 ‘일당백의 기상으로 공사를 다그치라’고 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일당백의 구호가 김 씨 가문 최고사령관들의 말처럼 훈련장이나 건설장에서만 쓰인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군인들은 훈련장이나 건설장이 아닌 곳에서도 이 말을 쓰곤 했고 필요에 따라서는 스스로의 고통과 싸우면서도 일당백을 외치곤 했다. 

나를 포함한 여군들은 주로 목욕할 때 이 구호를 외치곤 했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현재도 북한군 막사 내엔 제대로 시설을 갖춘 목욕탕이 없다. 겨울철엔 손발을 제대로 씻을 더운물이 ‘전혀 없음’도 강조하고 싶다. 막사마다 세면장은 있지만 목욕시설이 전무한 것으로 이해하면 좋을 듯싶다. 

내가 생활하던 부대는 군단직속 부대여서 제법 수도꼭지에서 산골물이 좔좔 흘러나오긴 했지만 겨울철엔 얼어버리기가 일쑤였다. 그렇게 물이 얼어버릴 때, 땀을 흘리는 훈련이 없고, 따라서 목욕을 안 하고 겨울 내내 버틸 수 있는 환경이라면 오죽 좋으랴만, 훈련은 훈련대로 해야 했고 그로인해 여군들의 몸에서 땀내는 땀내대로 진동하곤 했다. 

(필자는 사실 어느 때나 수도꼭지를 돌리면 더운물이 콸콸 나오는 세상도 있다는 걸 대한민국에 와서야 처음 알게 됐다.) 

당시만 해도 필요에 따라 더운물이 나올 수 있다는 건 상상도 하지 못했던 상황이었다. 당연히 목욕을 위한 더운물은 ‘만들어야’ 했고 ‘만든 더운물’은 한바가지 정도씩 동료들과 똑같이 나누어 쓰곤 했다. 

그렇게 미지근한 물 한 소랭이를 들고 들어서는 이른바 세면장엔 온기한 점 없다. 그래도 옷을 탈의하고 목욕재개를 해야 했으니, 서서히 찬물과 몸의 온기가 합쳐지면서 살결은 빨갛게 물들고 몸의 이곳저곳이 바늘에 찔린 듯이 아파나기 시작한다. 

그 고통의 순간이 지나기 바쁘게 분대원들 앞에서 ‘준비’구령을 외치는 분대장, 그러면 모든 분대원들이 미지근한 물 한소랭이를 어깨위로 쳐들고 분대장의 다음 구령을 기다린다. 그러면 분대장은 순간도 망설임 없이 ‘시~작!’하고 외친다. 그 명령에 맞춰 분대원들은 일시에 ‘일당백!’을 외치며 재빨리 찬물을 머리위로 끼얹는다. 

쩡~~함과 함께 북조선 여군들의 겨울철 목욕재개가 끝난다. 그렇게 나도 10년을 견디어 냈다. 

세탁은 고문이다  

물로 인한 여군들의 고통은 세탁으로 또 이어진다. 지하수에 파이프를 연결해 끌어올리는 수도에선 장마철이면, 세탁을 할 수 없을 정도의 흙탕물이 쏟아져 나온다. 하지만 그 정도는 비가 끊기면 해결되는 문제다. 10평정도의 세면장에 여군들이 우르르 모여서 주어진 시간 내에, 경쟁적으로 손세탁을 해야 하는 환경이 문제였다. 

상급자가 밑에서 빨래를 하는데 하급자가 위쪽에서 빨래를 하다간 큰 코 다친다. 상급자의 세탁물을 대신 빨아주어야 했고, 그런 센스가 없어 졸경을 치르는 경우가 다반사다. 특히 목욕물도 없는 겨울엔 빨래 자체가 고문이었다.

2년에 한번 주는 단벌 군(동)복은 세탁 자체를 포기 한다 쳐도 누구하나 말하는 사람이 없다. 하지만 여자로 태어난 게 무슨 잘못이기라도 한 듯 달마다 치러야 하는 고생은 피할 수가 없다. 남한처럼 일회용 생리대가 아닌 재생 생리대를 써야하는 북한의 여군들에겐 피해갈 수 없는 난제가 그것이다. 

그래도 2년에 한 번씩 4미터의 가재 천을 생리대 감으로 나누어 주곤 했는데 너무 빨아 써서 한쪽으로 밀리기도 했지만, 일단은 몸에 맞게 자른 그것을 늘 깨끗이 빨아서 준비해 놓아야 다음 달을 맞을 수가 있었다. 그나마도 수고스럽게 씻어서 빨래건조장에 널어놓으면, 그마저도 잃어버리기가 일쑤였다. 

옮기기도 부끄러운 이런 이야기를 더 이상 쓰지 말아야 하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계속]

뉴코리아여성연합 대표 이소연, 전 북한군 상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