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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5-11 06:40
미국이 비로소 북한을 '적'으로 부르다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48  


"수십 년 동안 우리는 적(adversaries)이었다. 이제 우리는 이런 갈등을 해결하고, 세계를 향한 위협을 치워버리며, 북한 국민이 받을 자격이 있는 모든 기회를 누릴 수 있도록 우리가 함께 일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5월 9일 평양을 전격 방문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부 장관이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과 만난 자리에서 한 말이다. 여기서 눈에 띄는 말이 바로 "적( adversaries)"이다.

북한과 미국이 적대 관계에 있다는 건 삼척동자도 아는 일이다. 하지만 역대 미국 정부는 이를 잘 인정하려고 하지 않았다. 적어도 북핵 문제와 관련해서는 그랬다. 적대 관계를 인정하면 북한의 핵무장은 "조미간의 적대 관계", 혹은 "미국의 적대시 정책의 산물"이라는 북한의 주장을 일부라도 인정하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미국은 전통적으로 북핵 문제를 북미관계보다는 핵비확산 체제의 문제로 간주했었다. 그래서 북한의 핵 포기에 대한 상응 조치로 교전 상태의 공식적인 종식을 의미하는 평화협정 체결과 적대관계의 청산을 의미하는 관계 정상화를 포함시키기를 꺼려했었다. 어쩔 수 없이 포함시키더라도 후순위로 미루거나 비핵화 이외에도 다른 조건들을 다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런데 폼페이오는 북한과 미국이 적대 관계임을 인정하면서 이를 해결하자고 말했다. 이는 한반도 비핵화에 매우 중요한 필요조건 하나가 충족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중국 다롄(大連)에서 시진핑(習近平) 주석을 만나서 한 말이다.

"관련국들이 조선에 대한 적대시 정책과 안보 위협을 없애기만 한다면, 조선은 핵을 가질 필요가 없으며 비핵화는 실현 가능하다." 

공교롭게도 폼페이오가 북미 적대 관계의 청산 의사를 내비친 것은 김 위원장이 이러한 발언을 한 다음날이었다. 그리고 김 위원장은 폼페이오와 만나 북미정상회담에 대해 토의했고 북한 매체들은 "만족한 합의"를 봤다고 전했다. 아마도 비핵화와 적대 관계 청산이라는 큰 틀에서의 합의가 이뤄진 것 같다. 
 

▲ 9일 평양을 찾은 마이크 폼페이오(왼쪽) 미국 국무장관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악수하고 있다. ⓒ노동신문

그렇다면 도저히 불가능해 보였던 한반도 문제 해결이 트럼프 행정부 2년 차에 접어들면서 가능해지고 있는 본질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대개 트럼프의 "최대의 압박"이 성과를 거둔 것처럼 언급되지만 이는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짚지 못한 것이다.

오히려 다른 맥락에서 짚어볼 필요가 있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폼페이오가 "적"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적대 관계의 종식 의사를 피력한 것은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의 오랜 하소연에 비로소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김정은 위원장은 3월 초순 문재인 정부의 특사단에게 "대화 상대로 진지한 대우를 받고 싶다"며 북미 정상회담을 희망한다는 메시지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달해달라고 부탁했었다. 김 위원장 본인은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였지만, 기적처럼 트럼프는 이에 동의했다. 3대째 이어져 왔던 북한의 오랜 ‘인정 투쟁’이 비로소 성과를 거둔 것이다.

이는 '트럼프 효과'로 부를 법하다. 북미 간의 적대 관계를 인정하고 정상회담을 통해 적대 관계 종식과 비핵화를 향한 담판을 짓겠다는 태도야말로 미국이 전통적으로 북한을 상대해온 외교 문법을 뒤집은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샴페인을 터트리기에는 이르다. 하지만 트럼프가 '관계 정상화를 통한 비핵화'라는, 가장 상식적이면서도 미국의 전임 행정부들이 거부했던 방식을 취하고 있다면 희망의 근거는 찾을 수 있다. 이는 김정은 위원장이 마음에 품고 있는 생각, 즉 "조미간의 적대 관계가 평화관계로 전환된 만큼, 국가 핵무력의 역사적 소임은 끝났다"는 전략적 결심과 잘 어울리는 짝이기 때문이다.  


북한, 3대째 내려왔던 '인정 투쟁' 성공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