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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1-11-14 21:18
오스비엠찜-아우스비츠 나치수용소의 참상을 능가하는 만행--정치범수용소 "22호 관리소"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2,972  

[교도소이야기]충격 고발 北 제22호 교화소…탈북자 리준하 육필수기 연재2 - 리준하

데일리NK는 중국에서 체류중인 탈북자 리준하씨가 5년간 회령 전거리 제22호 교화소에서 겪은 내용을 엮은 ‘교화소 이야기’(도서출판 시대정신刊)를 연재합니다. 저자 리준하 씨는 이 책 서문에서 “북조선 교화소에서 벌어지고 있는 온갖 악행과 인권침해에 대해 같은 민족인 한국 인민들과 자유와 인권을 옹호하는 세계 인민들에게 알리고 싶은 마음에서 책을 쓰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북한 교화소의 생생한 모습을 전하는 리준하 씨의 육필 수기에 독자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편집자註



[교화소 이야기⑪] 차에 깔려, 나무에 찍혀 죽어

대차란 적재량이 신형 지프차 4대분을 대신하는 쇠수레로 20~30명의 죄인이 몸에 하산바를 걸고 직접 끌어야 하는 수레다. 원래 대차는 구내반에서 전거리 역에 쌀을 실으러 갈 때 사용하던 것인데, 벌목반이나 상하차반에서 대량으로 물자를 운반하는 일에도 사용됐다.

대차는 길이 2m, 너비 1.5m이고 손잡이 쪽 길이는 2m로 생김새는 평범한 손수레와 같이 생겼지만 화물칸과 손잡이 전체가 쇠로 제작되어 대단히 무거웠다. 대차는 보안원들에게는 연료가 필요 없는 요긴한 운송수단이었으나, 해마다 꼭 사람을 죽이거나 멀쩡한 사람을 장애인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죄인들에게는 ‘원한’의 대상이었다.

대차는 크기와 무게가 상당할 뿐만 아니라 보통 나무나 쌀자루를 실으면 대차 바닥에서 3m이상의 높이로 적재하기 때문에 그 무게가 대단했다. 보통 수레는 한 사람이 끌고 다른 사람이 뒤에서 밀어주지만 대차는 20~30명의 죄인들이 대차에 하산바 고리를 걸어 한꺼번에 끈다. 힘과 발걸음을 맞추기 위해 한 사람이 ‘헤이~’라고 외치면 나머지가 ‘하이~’라고 외치면서 끈다.

대차 때문에 나도 한번 크게 혼났다. 그날 일은 죽어도 잊힐 것 같지 않다. 대체로 우리 벌목반의 경우 겨울철에는 죄인들이 산에서 벤 나무를 교화소 철문 앞까지 직접 끌고 오지만 여름철에는 대차를 갖고 나가서 산에서 벤 나무를 한 번에 모아서 싣고 온다.

나무를 대차에 쌓을 때는 나무가 흩어지지 않도록 단단히 고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중간에 나무가 떨어지지 않도록 대차 위에 올라서서 나무를 차곡차곡 쌓는 사람이 필요한데, 나중에 대차를 끌 때 이 사람이 방향타 역할을 하는 것이 벌목반의 상식이었다.

그날 나는 평소와 같이 대차 위에 올라가서 나무를 쌓고 있었는데 갑자기 오른쪽 눈에 경련이 왔다. 나는 특별히 미신을 신뢰하는 사람이 아니지만 오른쪽 눈에 경련에 올 때마다 좋지 않은 일이 생기는 경우가 많았다.

담당 지도원이 꾸물거린다며 욕을 해대서 더욱 기분이 좋지 않았다. 불길한 예감이 들어서 평소보다 나무를 더욱 꼼꼼하게 쌓았고 매듭도 단단히 붙들어 맸다. 대차 위에서 뛰어내려 손잡이 안으로 들어가 뒤를 돌아보니 도끼로 찍은 나무라 앞머리가 모두 뾰족해 당장이라도 내 등을 찌를 것 같이 보였다.

그동안 손잡이 안으로 수백 번을 들어갔지만 그런 느낌은 처음이었다. 나는 정신을 바짝 차리면서 반원들에게 주의를 주며 위험구간들을 하나씩 벗어났다. 경사가 심하거나 움푹 팬 곳을 지날 때 대차 위에 쌓인 나무가 앞으로 쏠려 사람을 덮칠 수도 있었다.

마침내 마지막 개울까지 벗어나고서야 마음이 놓였다. 이제부터 교화소 철문까지는 큰길이며 위험한 구간이 없었다. 100m 앞에 오르막이 보였다. 그 직전에는 약간 내리막이었는데 지금부터 달리며 속도를 내야 오르막을 쉽게 올라갈 수 있었다. 반장이 소리쳤다.

“자, 오르막이다. 뛰자!”

손잡이 안에는 내가 들어가 있었고 손잡이 양쪽에는 반장과 2조 조장이 각각 손잡이를 붙잡는 식으로 3명이 방향을 조절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겼다. 대차에 나무를 너무 많이 쌓아서 그 무게가 대단하여 속도가 다른 때보다 매우 빨랐다.

대차 뒤쪽에는 3명이 하산바를 대차에 연결해서 대차의 속도를 늦추는 역할을 맡았다. 그런데 대차의 속도가 빨라지자 이들이 미처 따라오지 못하고 땅에 넘어져 질질 끌려오게 되었다. 3명이 땅바닥에 뒹굴다보니 대차 옆에 있던 사람들에게도 영향이 미쳐 많은 사람이 자기 위치에서 원만히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바닥에 뒹굴던 3명의 하산바가 벗겨져서 제동력을 상실한 대차는 더욱 속도가 빨라졌다. 대차의 속도가 빨라지자 대차 옆에 있던 사람들도 대차를 따라오지 못하고 떨어져 나갔다. 앞에 있던 나와 반장, 2조 조장은 대차 뒤에서 벌어진 일을 알지 못했다.

일이 안 되려고 그랬는지 대차의 속도가 빨라지자 대차의 평형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뒤쪽에서 한 사람이 대차에 올라탔다. 내리막에서는 대차의 하중이 앞쪽으로 쏠리기 때문에 나처럼 대차 손잡이에서 방향타 역할을 하는 사람 쪽으로 하중이 가게 된다.

만약 방향타 역할을 하는 사람이 그 하중을 버티지 못하고 대차 손잡이를 놓으면 대차가 급정거 하면서 쌓여있던 나무들이 앞쪽에 있는 사람을 덮치게 된다. 뒤에 사람이 올라타 대차의 수평이 뒤쪽으로 기울자 손잡이를 쥐고 있던 내 몸이 공중에 붕 떴다.

이제 대차에는 앞에 3명, 양쪽으로 2명, 뒤쪽에 1명만 달라붙어 있는 꼴이었다. 그중에서 나는 발이 허공에 떠 있는 상태라 대차의 속도를 통제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못됐다.

“야, 뒤에서 누르지 말라!”

상황을 알아차린 반장이 뒤쪽을 향해 고함을 쳤다. 뒤에 있는 사람이 대차에서 뛰어 내리자 대차의 수평이 다시 앞으로 약간 기울었다. 내 발도 땅에 닿았다. 나는 다시 힘주어 대차 손잡이를 꽉 쥐었다.

출발할 때는 15명 정도가 대차에 달라붙었는데 이제 6명이 이 큰 대차를 통제해야 했다. 만약 여기서 대차가 급정차를 하거나 뒤집히게 되면 내가 죽을 확률은 90% 이상이었다. 나는 그때부터 요리조리 머리를 굴리며 달렸다.

그 상황에서 절대적으로 불리한 것은 손잡이 안에 있는 나였다. 일단 속도를 줄여야 했다. 손잡이를 위로 젖혀서 대차 뒤쪽이 땅에 닿도록 하고 싶었지만 나 혼자 힘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설사 내가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서 손잡이를 위로 올려 뒤쪽이 땅에 닿게 했다고 하더라도 그 충격의 반발력 때문에 대차는 급속히 앞으로 꼬꾸라지게 된다. 만약 손잡이를 놓게 되면 분명히 나무가 앞으로 쏠리면서 내 등을 꿰뚫을 것이다.

방법이 없어 마냥 달리고 있는데 앞에서는 경비대 초병들 7~8명이 근무교대를 위해 줄을 맞춰 걸어오고 있었다. 교화소 규정에 죄인들은 초병들이 보초교대를 할 때 그들과 마주치게 되면 초병들에게 길을 비켜주면서 그들이 죄인들을 확인할 수 있도록 돌아서 있어야 한다. 우리는 그 규정이 생긴 이래 처음으로 대차로 그 규정을 밀어버렸다.

“야, 이 새끼들아! 돌아!”

대열 선두에 있던 보초장이 말을 끝맺기도 전에 우리의 대차는 그들 정면으로 돌진하고 말았다. 나무를 가득 실은 대차에 울상을 짓고 있는 우리 3명만 달랑 매달린 것을 보고는 그들도 겁을 먹었다.

대차는 곧 감옥 담장 옆을 따라 바람처럼 달려 교화소 철문 앞을 지나게 되었다. 대차가 멈추지 않아 목적지인 교화소 철문을 지나 계속 달린 것이다. 이런 속도라면 10리 아래 차단초소까지 가게 될지도 몰랐다.

우리가 차단초소까지 가게 된다면 담당 보안원이 악을 쓰며 몽둥이질을 해댈 것이다. 교화소 철문을 지나자 대차에 깔려 죽는 것보다는 보안원에게 욕먹을 일이 걱정되었다. 순간 내 눈에는 교화소 담장 밑으로 지어진 온실의 보호막이 보였다.

경사는 60도, 길이는 2m 정도 되는 보호막이 교화소 담을 따라 쭉 설치되어 있었다. 내가 그쪽으로 방향을 틀자 반장과 2조 조장이 금방 내 뜻을 알아챘다. 순간적으로 오른쪽 바퀴가 경사면을 타고 올라가면서 기우뚱해진 대차가 4~5m 정도 움직였다.

그러다 오른쪽 바퀴가 경사면을 타고 땅으로 내려오자 이제는 대차가 제자리에서 360도로 빠르게 회전하면서 손잡이 안에 있던 나를 대차 밖으로 날려버렸다. 나는 대차가 회전하는 탄력 때문에 온실벽 쪽으로 날아가 교화소 담벼락에 부딪치고 말았다.

부딪친 왼쪽 허리에 통증이 왔지만 다행히 크게 다친 곳은 없었다. 내 오른쪽에 있던 반장은 온실 안으로 떨어졌고, 왼쪽에 있던 2조 조장은 마지막에 손잡이를 놓아 위기를 모면했다. 뒤에 있던 3명도 별다른 부상이 없었다.

“야, 난 너가 죽는가 했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진정시키며 앉아 있는데 반장이 넋 나간 표정으로 말을 걸어왔다. 그 자리를 지나던 보안원들도 무슨 일인가 싶어 우리를 바라볼 뿐 욕을 하지는 않았다. 대차가 덮친 온실은 말이 온실이지 실제는 아무것도 재배하지 않고 버려진 땅이었다.

대차는 손잡이 부분은 하늘을 향하고, 뒤는 완전히 땅에 닿아 있었다. 뒤늦게 3조 조장이 사람들과 도착해 다시 대차를 제대로 세우고 교화소 철문으로 향했다.

아마 그때 대차가 땅에 고꾸라졌거나 멈추지 못하고 차단초소까지 내려갔더라면 나는 밀리는 나무에 찢겨 죽거나 큰 중상을 당했을 것이다. 대차 바퀴에 깔려 죽은 사람, 팔다리가 부러진 사람, 대차에 실은 나무에 찍혀 죽은 사람 등 하여간 이 대차는 수많은 사람을 죽게 하거나 불구자로 만들어 버렸다.

그래서 우리 죄인들은 대차를 ‘원한의 대차’라고도 불렀다. 이런 원시적인 노동도구 때문에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화소 보안원들은 대차를 ‘연료가 필요 없는 편리한 운송수단’으로 여기면서 계속해서 죄인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

[교화소 이야기⑫]잘못없어도 욕먹고 매맞기 일쑤

일반적으로 다들 아름답다고 느끼는 봄을 우리 죄인들은 ‘의붓어머니 봄’이라고 부른다. 교화소 죄인들은 여름을 ‘모기 여름’, 가을을 ‘어머니 가을’, 겨울을 ‘목이 없는 겨울’이라고 부른다. ‘목이 없는 겨울’이란 너무 추워서 몸을 움츠리다 보면 꼭 목이 없는 사람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교화소에서는 담당 보안원의 지시에 따라 당일의 작업과제가 달라진다. 하루는 우리 1조에 나무 찍기 과제가 주어졌다. 2조는 조장이 책임지고 제방공사에 나가고, 3조는 2개 분조로 나눠져 감방 똥 푸기와 돼지우리 짓는 일이 맡겨졌다.

담당 관리는 3조의 1개 분조를 데리고 자기 집으로 갔고, 고정 초병이었던 영수는 제방공사로, 또 한 명의 초병이었던 정철이는 우리 1조와 함께 산으로 향했다. 나는 14명의 조원들과 함께 도끼와 하산바를 착용하고 목적지인 원골로 향했다.

과제는 한 사람당 직경 25cm, 길이 3m 이상의 피나무를 한 대씩 찍는 것이었다. 원골까지는 10리가 조금 넘는 거리였기 때문에 서둘러야 했다. 하지만 전날 제방 쌓기 작업에서 너무 과로했기 때문에 나는 조원들에게 내 발걸음에 맞추어 천천히 산 위로 올라가라고 지시했다.

그런데 아침식사 때 뭘 잘못 먹었는지 초병 정철이가 계속 똥 씹은 표정으로 “이런 속도로 언제 일을 끝마치겠나?”라며 욕설을 퍼부었다. 나는 못 들은 척하고 걸음을 알맞게 조절하면서 행군을 진행했다.

“야, 준하 이 새끼야! 뛰라니까? 원골까지 뛰어!”
“선생님, 아이들이 어제 제방공사에서 많이 지쳤습니다. 좀 천천히 가도 됩니다. 어쨌든 입방하는 시간에 맞추면 되지 않습니까?”
“이 새끼 개수작 말고 뛰라면 뛰어!”

나는 입이 써서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돌아서서 뛰기 시작했다. 우리들이 달릴 때마다 ‘절그럭, 절그럭’ 하고 하산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는 조원들에게 모두 내 속도에 맞추라고 당부하며 곧 앞으로 나섰다. 나는 구보 속도를 높여 우리와 초병 정철이 사이를 어지간히 벌여 놓은 다음에야 속도를 줄였다.

“석기(‘돌머리’의 은어) 같은 새끼! 자기는 아침에 밥이라두 처먹고 나오니 우리같이 배고픈 사람들의 심정을 알 리가 없지!”

거리낌 없이 대놓고 욕을 하는 나를 보고 조원들은 통쾌한 사람이라고 웃고 떠들었다. 교화소 관리들의 살림집 마을을 지나쳐 산 위를 올라가다 교화소 부소장과 마주쳤다. 부소장과 정치부장, 그리고 몇몇 간부들의 살림집은 마을과 약 50m쯤 떨어져 있었다. 밤에 무슨 일을 하고 아침에 퇴근하는 듯한 부소장은 우리를 불러 세웠다.

“야, 여기 반장이 누구야?”
“제가 조장입니다. 반장은 제방공사에 나갔습니다.”
“벌목반인 모양인데 초병은 왜 안 보여?”
“뒤에서 옵니다.”

내 말이 끝나기 바쁘게 길모퉁이로 초병 정철이가 모자까지 벗어들고 헐레벌떡 뛰어오다가 부소장을 보고는 기겁하여 그 자리에서 차렷 자세로 경례를 하였다.

“정철이구나! 그런데 왜 너 혼자야!”
“예, 저기 영수 동지는 제방공사에…….”
“그러면 경비대에 말하고 경비원을 뽑아가야지 왜 혼자 와?”

짜증이 섞인 부소장의 지시에 초병 정철이는 우리에게 왔던 길을 되돌아가자고 재촉했다.

“에이, 머저리 같은 것이 조장 말대로 걸어왔으면 부소장과 안 만났지!”

조원들이 뒤에서 자기들끼리 쑥덕거렸다. 초병 정철이 경비대에 도착하여 경비소대장에게 보고하자 곧 어려보이는 초병이 울상이 되어 무기장 구류를 추슬러 올리며 우리와 동행하였다. 경비대를 떠나자 초병 정철이는 대뜸 나에게 욕지거리를 퍼붓기 시작했다.

“야 준하, 이 새끼! 너 내가 뛰란다고 그렇게 빨리 뛰면 어떻해?”
“선생님이 빨리 뛰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 새끼, 어디에 대고 대답질이야?”

조선말에 “시어머니 역정이 개 옆구리를 차게 된다.”는 말이 있다. 나이 어린 정철 초병이 화를 못 이겨 그 불만을 나에게 퍼붓기로 작정한 것이다. 화가 날 대로 난 그는 여차하면 나에게 발길질을 할 태세였다. 하지만 정철 초병은 나를 잘 알고 있었다. 오히려 나를 폭력으로 굴복시키려고 하면 나를 더 통제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것을…….

교화소 생활에 익숙한 나는 담당 관리원 외에는 초병들이 죄인들을 때릴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초병들이 나를 때리려고 하면 더욱 더 말로 대들었다. 그렇게 산에 올라 달랑 밥 한 덩어리 먹어가며 힘들게 피나무를 끊어내고 하산길에 나섰다.

진짜 힘든 일은 지금부터였다. 나는 제일 뒤에서 앞 사람의 나무를 내가 끌고 있는 나무 앞머리로 받쳐 주기도 하고, 경사막에서는 하산바를 벗어버리고 같이 끌어올려 주기도 하면서 중간까지 내려왔다.

내리막길에서 내가 끌던 나무가 갑자기 움직이지 않아 뒤를 돌아보니 애송이 초병이 내 나무에 올라타서 미끄럼을 타는 어린애 마냥 즐거워하고 있지 않은가? 내 나무는 굵기가 굵어서 가구 재료로 쓰기에 딱 좋았을 뿐만 아니라 올라타도 평평한 매생이처럼 생겼다.

봄철이라 골짜기는 얼음이 녹으면서 땅이 질척거렸다. 내리막이 끝나고 다시 오르막길에 다다랐는데도 이 애송이 초병이 나무에서 내릴 생각을 안 했다. 나는 속으로 ‘이런 씨팔 재수 없는 새끼!’라고 욕을 했지만 겉으로는 어떤 표정도 지을 수 없었다.

악으로 있는 힘을 다해 경사막을 올라서자 나무에 올라타고 있던 애송이 초병이 “너 힘이 장사구나? 교화소 철문 앞까지 나를 한번 끌고 가봐라!” 하며 히히닥거렸다. 나는 말할 수 없는 분노와 모멸감을 애써 참다가 좋은 꾀가 떠올랐다.

그래서 비틀거리는 척하면서 큰 바위에 나무를 충돌시켜 버렸다. 나무 위에서 중심을 잡느라 총을 멘 채 까마귀가 날갯짓 하듯 허둥대던 애송이는 바위에 부딪힌 나무와 함께 진흙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그러더니 벌떡 일어서 목의 경동맥을 시퍼렇게 세우며 68자동보총의 개머리판을 내 얼굴을 향해 휘둘렀다. 하산바를 메고 있던 나는 허리를 숙여 애송이 초병의 공격을 피했다. 호걸처럼 멋진 동작으로 68자동보총을 휘두르던 애송이 초병은 내 등에 무릎이 걸리면서 다시 진흙탕으로 곤두박질 쳤다.

어깨에서 하산바를 벗으며 아래를 보니 10m 밑에서는 초병 정철이와 조원들이 서서 나와 애송이 초병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때 진흙탕에서 뒹굴던 애송이 초병이 다시 나에게 달려들었고 나는 본능적으로 얼굴을 향해오던 개머리판을 손으로 막았다.

무심결에 총을 막는다고 막았지만 어느 순간 그 총은 내손에 쥐어져 있었다. 나는 내 손에 쥐어져 있는 총을 보며 눈이 휘둥그레졌고, 애송이 초병도 당황하긴 매 한가지였다. 애송이 초병과 나는 서로의 얼굴을 한 번 쳐다보고, 내손에 쥐어진 총을 한 번 쳐다보며 어찌해야 할지 모르고 있었다.

10m 아래에 있던 초병 정철의 격발기 당기는 소리를 들은 것은 내가 먼저였다. 나는 얼른 정신을 차리고 애송이 초병 앞에 총을 내던지고 서너 걸음 뒤로 물러서서 주저앉았다. 초병 정철이는 허둥지둥 나무 몽둥이를 찾아들고 올라와서 나를 사정없이 두들겨 팼다.

숭어가 뛰면 망둥이도 뛴다고 애송이 초병 또한 이악스러운 발길질을 시작했다. 나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손으로 얼굴을 꼭 싸쥐고 때리는 대로 몸을 내맡겼다. 초병 정철이는 한 10번 몽둥이질을 하고 그쳤는데, 애송이 초병은 울음이 섞인 목소리로 온갖 쌍소리를 내뱉으며 발광을 했다.

그날따라 일이 안 되려고 했는지, 자기 집에 돼지우리를 지으러 갔던 담당 관리원은 목재가 부족하여 자기 집 일을 마무리 하지 못하고 교화소로 돌아갔다가 부소장에게 불려가서 호되게 비판받고 우리가 작업하는 산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담당 관리원은 애송이 초병에게 두들겨 맞고 있는 나와 그 옆에서 그것을 지켜보고 있는 초병 정철이를 발견했다. 가뜩이나 부소장에게 욕먹은 일로 초병 정철이에게 화가 나있던 담당 관리원은 우선 애송이 초병에게 발길질을 하고 다음으로 초병 정철이의 뒤통수를 주먹으로 때렸다.

“아, 왜 때립니까?”
“야 임마! 그만큼 올라가면서 간부들 눈에 띄지 않게 조심하라고 했는데 그것도 제일 사람이 없는 시간에 하필이면 부소장 눈에 걸려? 그리고 뭘 잘했다고 이 아이한테 행패야?”

본인이 두들겨 팰 때는 아까운 줄 모르더니 그래도 자기 아닌 다른 사람이 자기가 관리하는 죄인을 두들겨 패는 것을 보니 화가 난 모양이다.

“이 새끼가 내 총을 뺏었습니다. 알고나 편드시오. 쳇.”

담당 지도원은 나에게 어떻게 된 일이냐며 물었다. 나는 하나도 빠짐없이 그대로 고해 바쳤다.

“그것 봐. 제풀에 제가 놀라가지고. 도적놈들 앞에서 망신스럽지도 않나?”
“아, 지도원 동지! 너무 이 새끼만 감싸고도는 거 아닙니까?”
“됐다 임마. 너는 말할 상대도 안 돼! 야, 너희들 빨리 나무 끌고 입방하라!”

나는 아직도 놀란 눈으로 상황을 주시하던 우리 조원들에게 혀를 날름거리며 웃어보였다. 보이지 않게 돌아서서 웃음을 참고 킥킥거리던 조원들과 함께 나는 신이 나서 한걸음에 교화소까지 내달렸다.

[교화소 이야기⑬]팔을 뒤로 묶어 공중에 매달아(일명 비둘기 고문)

초병과 있었던 사건이 끝난 줄 알았는데 일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담당 관리원이 내 편을 들지 않고 그냥 초병들을 나무라는 선에서 끝났다면 조용히 일이 끝났을 것이다.

그런데 애송이 초병이 경비대 소대장에게 울며불며 고자질하는 통에 이 사건은 교화소장에게까지 알려지고 교화소 전체가 들썩거리게 되었다.

일부 보안원들은 내 담당 관리원이 사적인 동정심에 빠져 죄인과 타협하려 했다며 뒷소리를 해댔다. 다음날 아침식사 후 잡부조장이 잔뜩 겁먹은 인상을 하고 나를 찾아왔다.

“준하! 보안과 비서선생이 찾소.”
“예?”

보안과라는 말에 나는 살짝 가슴이 떨렸다. 우리 반 반장은 자기 양말과 내복을 벗어 나에게 입혀주느라 수선을 떨었다.

“준하야! 가서 매를 맞을지도 모르니까 아무거나 껴입어라. 그리고 혹시 독방에 갈지도 모르니까 이 양말도 덧신는 것이 좋겠다.”
“너무 걱정마쇼. 어차피 한 번은 당해야 할 일인데 죽기야 하겠소?”

모든 반원들이 동정하는 표정이니 그들 앞에서는 약한 모습을 보일 수 없어 씩씩하게 감방을 나섰지만 막상 보안과 비서실 앞에 서고 보니 정신이 오락가락하며 다리가 춤을 췄다.

나는 긴장감을 수습하기 위해 손바닥으로 다리도 때려 보았지만 다리에서 일어난 경련이 이번에는 속으로 올라와 입술까지 덜덜 떨렸고 정신이 혼미해지는 것 같았다.

아뿔싸! 태연한 척 자연스럽게 비서실에 들어가야 하는데, 그걸 잊고 그만 벌컥 문을 열고 무작정 발걸음을 들여놓았다.

“이 새끼가 보고도 없이 들어와?”

보안과 비서의 째지는 듯한 고함소리와 함께 비서의 손에 있던 물컵이 내 얼굴을 향해 날아왔다. 날아오는 물컵을 그냥 맞았어야 하는데 내 의도와 상관없이 어느새 내 허리는 숙여져 있었다. 보안과 비서가 아끼던 사제 유리컵은 철문에 부딪쳐 박살이 났다.

“선생님, 가 282번 리준하 선생님이 불러서…….”
“들어왓!”

나는 엉거주춤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섰다. 우선 무릎을 꿇고 바닥에 앉으려는데 보안과 비서가 고함을 질렀다.

“너, 저기 가서 마음에 드는 것으로 하나 골라가지고 와!”

보안과 비서가 가리키는 방향에는 한 아름도 넘는 나무 몽둥이가 쌓여 있었다. 나는 그중에 넓이가 7cm, 두께가 4cm, 길이가 1m 정도 되는 몽둥이를 두 손으로 받쳐 들고 비서 앞에 꿇어앉았다. 몽둥이질을 기다리고 있는데 비서의 목소리가 들렸다.

“무릎에 끼우라.”

무슨 소리인지 몰라 머뭇했더니 순간 비서의 군홧발이 내 가슴을 걷어찼다. 벌렁 자빠졌다가 후다닥 일어나 다시 무릎을 꿇고 앉았는데 비서가 또다시 내 가슴을 걷어찼다. 이렇게 열 번도 넘게 오뚝이 놀음을 하고 나니 비서가 입을 열었다.

“무릎에 끼우고 앉으라구. 조선말 몰라? 관절에 끼고 앉으라구!”

그 순간 나는 이 비서가 다른 보안원들과는 질적으로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다른 보안원들은 꽥꽥 소리를 지르며 쌍욕을 퍼부어도 두렵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는데, 이 비서는 쌍욕은 하지 않았지만 말 한마디 한마디에 무서운 독기가 뿜어져 나왔다.

나는 얼른 몽둥이의 7cm 되는 면을 무릎 뒤에 세워서 살며시 앉았다.

비서는 책장을 한 장 찢어가지고 엉덩이와 종아리 사이에 끼워놓으면서 “종이가 떨어지면 안 된다.”는 말을 남기고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한 5분쯤 지나서 나갔던 비서가 문을 열고 다시 들어섰다.

“종이 몇 번 떨어졌나?”
“안 떨어졌습니다.”

눈에서 불꽃이 피는가 싶더니 입술에서 피가 흘렀다.

비서는 내 뒤편에 있는 고정된 책상 다리에 수갑을 걸어 내 손에 채우고는 다시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이번에는 종잇장 끝을 발뒤꿈치에 끼워놨으므로 조금만 움직여도 종이가 떨어지게 되어 있었다.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한참을 낑낑거리며 앉아 뭉개고 있었다. 이제는 다리에 느낌도 없어졌다.

종이는 계속해서 떨어졌고 종이가 떨어질 때마다 군홧발로 걷어 채였다. 그렇게 4시간이 지나고 나자 이번에는 나를 꼿꼿이 서 있게 하였다.

일어서려고 하는데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다. 주저앉는 내게 또다시 군홧발이 날아왔다. 맞으면서도 죽을힘을 다해서 일어서니 무릎에서 ‘두둑~’ 하는 소리가 났다.

겨우 다리를 펴서 섰더니 갑자기 발바닥부터 뜨거운 열기가 다리로 올라오면서 다리의 맥을 모두 풀어버리는 느낌이 들었다. 순간 비틀대며 책상에 손을 짚었더니 무릎에 끼고 있던 몽둥이를 들고 있던 비서가 벼락처럼 내 손등에 몽둥이질을 해댔다.

그때까지도 나는 외마디 비명만 지르면서 낮은 소리로 “고치겠습니다!”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래도 비서는 막무가내였다. 시퍼렇던 손등은 거멓게 되더니 결국 살이 터졌다.

“이제 시작이야. 점심시간이니까 우선 밥부터 먹고 다시 보자!”

비서는 잡부조장을 불러 나를 독방에 넣으라고 하고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잡부조장과 면식소부가 나를 부추겨 2호 독방까지 옮겨줬다.

“울며불며 비명을 지를 줄 알았는데 밖에서 듣자하니 그저 ‘악, 악’ 하는 소리만 나더구만!”
“그러게. 이때까지 보안과 취조 받은 사람들 중에 울고불고 난리치지 않은 사람이 있었나?”

독방 문이 닫히면서 그들의 말이 끊겼다. 사실 나는 기뻤다. 별것도 아닌 일이지만 남들처럼 비굴하게 울며불며 살려달라고 애걸하지 않았다는 것이 기뻤다.

독방에 들어가니 내 밥은 ‘5급 밥’이었다. 직경은 그냥 5cm였지만 높이가 3cm밖에 안 되는 아주 적은 밥이었다. 너무 힘들어 목구멍으로 밥을 넘기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앞으로 고문을 이겨내자면 그거라도 먹어야 했다.

오후 2시쯤 되자 다시 보안과 비서실로 불려갔다.

“흥, 아직 멀었군! 그럼 오전에 했던 것을 그대로 해보지 뭐.”

보안과 비서의 냉랭한 말이 들려왔다. 다시 무릎 뒤에 나무를 끼고 바닥에 앉았다. 곧 다리가 마비되었다.

“준하! 나 기억나?”
“예.”
“그럴 테지. 후회되는 점 없나? 있지!”
“예.”
“무엇이 후회되나?”

나는 질문의 대답을 찾지 못하고 고개를 떨구었다.

“너, 너의 담당 선생에게서 담배 받아 피운 적 있다며?”
“절대 그런 일 없습니다!”

일 시킬 때만 “준하야! 준하야!” 하고 평상시에는 ‘개새끼’를 입에 달고 사는 담당 선생이 나에게 담배를 주다니 그런 일은 꿈속에서도 일어나지 않았다. 내 생각과는 상관없이 비서의 몽둥이질이 이어졌다.

(다음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