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난민인권연합
자유게시판
home > 자유게시판 > 탈북수기
 
작성일 : 11-11-14 21:22
오스비엠찜-아우스비츠 나치수용소의 참상을 능가하는 만행--정치범수용소 "22호 관리소"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2,903  
[교화소이야기⑮]"아무것도 먹이지 말라"…3일 만에 사망

강운호. 이 사람은 함경북도 무산에 어머니와 아내를 두고 33살의 나이에 교화소에서 억울하게 죽었다. 강운호는 2과 5반 소속으로 나와는 아무런 인간관계가 없는 사람이었지만 그의 죽음에 대해서 상세히 알고 있다.

2003년 6월 말 2과 5반에서 평죄인으로 생활하던 그가 노력반에 배치된 지 8개월 만에 허약 2도에 걸려 본소에 내려오게 되었다. 본소 허약반에서 생활하던 강운호는 한 달 만에 간염으로 병방 2호실에 입원하였는데 여기서 그는 군의(軍醫)의 음모에 걸려 죽음을 당했다.

일요일이었다. 아침 10시부터 시작된 정치강연회는 정오가 다 돼서야 끝났다.

장황하고 긴 사설을 귀 아프게 듣고 난 뒤 감방으로 들어갈 줄 알았는데 강연회 진행자는 위생원 리학모에 대한 사상투쟁회의*를 선포했다. 강당에 모여 있던 죄인들 모두가 무슨 일로 그러는가 궁금하여 학습시간에 졸던 사람들도 눈을 번쩍 떴다.

보안과 비서와 함께 위생원 리학모가 강당 보안원 출입문을 통해 들어섰다.

“다들 잘 들으라! 이 새끼가 자기 병방에 있던 2과 강운호를 때려죽인 새끼야!”

모든 죄인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리학모 위생원이라면 모든 보안원과 죄인들이 다 인정하는 높은 의술을 갖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가 사람을 때려죽이다니? 나도 상당히 놀라 보안과 비서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다들 조용히 하라! 병방 2호실에 입원한 강운호가 밥을 안 먹는다면서 ‘고의병으로 병보석 석방되려고 하지 말라.’면서 이 새끼가 허약에 걸려 운신도 못하는 강운호의 아가리를 마구 벌려 강짜로 밥을 쑤셔 넣다 못해 발로 배때기를 밟았다. 그래서 한 시간 전에 강운호가 죽었다. 이 새끼 때문이야!”

보안과 비서는 리학모의 머리를 툭툭 때리면서 이렇게 말했다. 머리를 맞으면서도 리학모는 억울한 기색으로 머리를 숙이고 있었다.

하지만 형기를 받고 힘든 탄광으로 쫓겨 갈 줄 알았던 리학모는 3일 만에 독방에서 풀려나와 다시 위생원으로 복귀하였다. 그제서야 이 사건의 전모가 교화소에 알려지게 되었다.

리학모는 독방에서 나온 다음날 우리 반 휴게실로 찾아와 “준하, 감기약 좀 얻으러 왔소.”라며 내게 말을 건네왔다.

독방에서 풀려난 그의 얼굴에는 아직도 수심이 가득하였고 나는 그를 휴게실 안에 있는 으슥한 창고로 불러 그가 원하는 담배를 건네주었다. 담배 불을 붙인 리학모는 길게 연기를 품으며 입을 열었다.

“준하, 내가 정말 강운호를 때려 죽였다고 생각하오?”
“어떻게 된 일이오?”

리학모는 묻는 말에 대답 없이 연신 담배만 뻐끔거렸다.

“사실은 내가 죽인 게 아니오. 정학 군의가 죽인 것이나 다름없소.”
“정학 선생이 죽이다니?”

“사실은 강운호가 정학 군의하고 사업을 벌여서 병보석으로 나가게 됐단 말이오.

강운호의 형이 장사를 하는데 돈이 좀 많은 것 같아. 자세한 것은 잘 모르겠는데 어쨌든 정학 군의가 돈을 받아먹고 강운호를 병보석으로 내보내주겠다고 약속했다는데, 강운호가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돌아가면서 말을 다 해버렸으니 정학 군의가 가만히 있을 수 없었겠지.

하루는 정학 군의가 영 안 좋은 인상으로 나를 찾아왔단 말이오. 그러면서 하는 말이 ‘학모, 너네 병방에 강운호란 새끼가 있지? 그 새끼 너에게도 내가 자기를 병보석으로 내보내준다고 개 아가리질을 했나?’ 이러지 않소?

그래서 내가 ‘선생님 무슨 말을 하는 겁니까?’ 하고 물으니까 ‘흥, 너에게는 아직 말하지 않은 모양이구나. 개새끼가 어디서, 살려줄 수 없겠군. 어디 제 입놀림 덕을 한번 보라지!’라며 투덜대더군.

그러면서 ‘야, 그 새끼 이제부터 밥은 물론 국물도 먹이지 말라! 그 새끼 아가리에 밥 한술이라도 들어갔다가는 너 이 새끼 죽을 줄 알라! 알았나?’ 이러더란 말이오.”

리학모는 잠시 숨을 고르더니 말을 이어갔다.

“준하도 알다시피 정학 군의가 어떤 사람이오? 누가 그 사람 말을 거역하오? 그래서 나는 정학 군의가 시키는 대로 한 이틀 강운호에게 아무것도 먹이지 않았는데, 아 글쎄 이 머저리 같은 게 밥을 안 주니까 오늘 내일 병보석으로 나가는 것으로 생각했단 말이오.

3일째가 되니까 허약병으로 고생하던 제까짓 게 견딜 수 있나? 그냥 정신을 잃고 말았지. 강운호가 정신을 잃자 나는 급한 마음에 밥을 입에 떠 넣어주며 어떻게 해서든 정신을 차리도록 분주히 움직였는데, 그때 강운호가 기절한 소식을 들은 정학 군의가 나를 자기 방으로 급히 부르더라고.

나를 부른 정학 군의는 자기가 지시할 때까지 강운호에게 밥을 먹이지 말라고 큰소리를 치더란 말이오. 정학 군의에게 불려갔다 다시 병방으로 돌아와 보니 그때는 이미 강운호의 숨이 넘어가고 말았소.

그러고 나니 정학 군의는 내가 자기의 지시에 따르지 않고 강운호를 죽게 했다고 모든 죄를 나에게 덮어씌운 것이오. 먹지 못해 기력이 없는 사람에게 밥을 먹인 것이 무슨 죄가 된단 말이오?”

리학모는 나에게 자신의 억울한 심정을 털어놨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에 대한 싸늘한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나중에 보안원들 사이에서 강운호의 죽음에 리학모는 특별한 죄가 없는 것으로 결론이 났으나 죄인들은 오랫동안 그를 비난했다.

죄인들은 리학모의 억울한 상황은 모른 채 죄인을 굶겨 죽이고도 별 처벌 없이 계속 위생원질을 하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었다. 반년쯤 지나서야 이 사건의 전모가 교화소 내 죄인들에게까지 알려졌고 리학모에 대한 죄인들의 오해도 풀렸다.

정학 군의는 당시 32살로 회령에 가시집*을 두고 있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이 사람은 자기 체면을 유지하기 위해 눈썹하나 까딱하지 않고 한 사람을 굶겨 죽였다.

과연 이 사람에게도 인간성이라는 것이 있을까? 물론 있을 것이다. 사람이라면 너나 할 것 없이 태어날 때부터 착하고 아름다운 마음씨를 갖고 태어난다.

이 사람도 역시 어릴 때는 착하고 순수했을 것이며 자기 가족과 처자식에게는 따뜻한 가장이었을 것이다. 그런 그가 어찌하여 사람을 굶겨 죽이고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한단 말인가?

조선의 교화기관은 사람이 사람을 굶겨 죽이고도 너털웃음을 짓는 포유류 동물원 같은 곳이다. 인간으로 태어나서 자연피해, 노동재해, 질병 등으로 죽는 것조차도 매우 안타까운 일인데, 다른 사람의 모략에 의해 굶어죽은 일은 너무나 원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강운호 스스로 입방정만 떨지 않았으면 뇌물의 힘으로 조용히 집에 돌아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 사건의 본질은 교화소 간부들이 부정부패와 죄인들을 짐승처럼 다루는 태도에 있었다.

애초부터 조선의 교화정책이 바로 서 있었다면 강운호처럼 어이없이 죽어나가는 사람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교화소 이야기-16] 절대로 도주 않고 끝까지 살아 나가야

‘앙~앙~’

규칙적으로 높아졌다 낮아졌다 반복되는 고동소리가 온 교화소 골안에 울려 퍼졌다. 이때는 죄수나 간부나 모두 귀를 쫑긋 세우고 전시상황을 방불케 하는 비상행동지침에 따라 움직이게 된다.

‘누가 또 도주했구나!’
“작업 중지! 모두 하던 일을 멈추고 교화소로 내려간다. 빨리빨리 서두르라!”

담당 보안원과 초병이 산에 흩어져 나무를 찍고 있던 죄인들에게 서두르라고 악을 썼다. 곧장 38명의 죄인들이 모이자 인원점검을 끝내고 산을 내려가 모두 감방 안에 감금되었다.

“잡부조장, 어느 반이오?”

철문을 통과하여 감방으로 들어오던 반장이 반마다 인원점검을 마치고 철문을 잠그던 잡부조장에게 물었다.

“4과에서 도주자가 났소.”

바쁘게 보이는 잡부조장에게 더 이상 말 걸기가 미안했는지 반장은 곧장 감방 안에 들어와 바닥에 드러누워 버렸다. 교화소에서 도주자가 생기면 도주자가 붙잡힐 때까지 죄인들 전원이 감방 안에서 갇혀 지내야 했다. 이때는 작업도 없었다.

“모두들 나와 모이라!”

3일 동안 감방 안에 갇혀 있던 죄인들은 본소 마당에 반별로 집결하였다. 나가면서 보니 낙후자 휴게실 앞 공터에 말뚝이 세워져 있고, 얼마나 두들겨 맞았는지 반죽음이 다된 도주자가 거기에 묶여 있었다.

“다들 조용하라!”

보안과장 남병식 보안원의 말에 술렁대던 죄인 대열이 순간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모두 눈 뜨고 똑똑히 보라! 도주하는 새끼는 어떻게 되는지! 시작하라!”

남병식 보안원의 말이 끝나자 교화과장이 앞에 나서서 판결문을 펼쳐 들고 엄숙한 목소리로 읽어 내려갔다.

“도주자 ○○○는 사회공민시절 자신의 안락과 이익을 추구하여 귀중한 국가재산을 절치(절도)한 죄로 1999년 ○월 ○일 6년형을 선고 받고 전거리 제12교화소에 입소하였다. 나라와 인민 앞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짓고 교화소에 들어왔으면 자기의 죄를 인정하고 교화노동에 충실해야 하는 것이 수용자가 해야 할 마땅한 본분이다.

하지만 이 자는 공화국의 관대한 법적 제재에 도전하여 도적질로 자기 배나 채우면서 노동을 게을리 하다가 끝내는 자기에게 개전의 길을 열어준 고마운 어머니 조국을 배반하여 도주하였다가 ○월 ○일 경각성 높은 전거리 마을 인민들에게 발각되어 체포되었다. 그러므로 나라와 인민을 배반하고 도주한 ○○○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중앙교화국 재판소의 판결에 따라 사형에 처한다!”

교화소 마당에서는 죄인들의 침 넘어가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사격수 앞으로!”

경비소대장의 구령에 따라 4명의 사격수가 어깨총 자세로 자동보총을 들고 나와 도주자가 묶인 말뚝의 전방 5m 앞에 나란히 섰다.

“우로 돌아!”

경비 초병들의 발걸음 소리만이 교화소 마당에 울려 퍼졌다.

“도주자 ○○○을 향하여 장탄! 단발로 쏴! 쏴! 쏴!”
“탕, 탕, 탕!”

귀를 찢는 총성이 교화소 안에 울려 퍼졌다. 첫 번째 사격으로 이마에는 구멍이 나고 살점과 함께 턱뼈가 튀어나갔으며, 두 번째 사격으로 가슴과 배에 피가 튀겼고, 세 번째 사격으로 허벅지와 무릎 관절이 부서졌다.

말뚝에 묶여 있던 도주자는 다리가 풀리며 무릎 꿇는 자세가 되어 머리를 땅바닥에 처박았다.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참상이었다.

“도주자의 말로가 어떻게 되는지 눈 크게 뜨고 똑바로 보라!”

보안원들은 죄인들이 일렬종대로 서서 시체 앞을 지나가게 하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공포감이 전신에 퍼졌다.

총탄에 맞아 사방으로 뿌려진 살점과 핏자국들이 우리들의 눈을 시리게 했다. 우리들은 감방에 들어와서 한참이 지난 후에도 모두가 입을 열지 못하고 손장난하는 사람조차 없이 조용히 있었다. 떨리는 가슴이 진정되지 않았다.

“다들 왜 말이 없니?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고 살아있는 우리야 살아야 될 게 아닌가? 자, 다들 긴장 풀고 위생사업(이잡이) 할 사람들은 위생사업하고 누워 잠잘 사람은 누워!”

분위기를 바꿔 보려던 반장 말이 끝나기도 전에 창살 밖에서 잡부조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모두 강당에 모이요!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두 나오라는 보안과장 선생님의 지시요!”

들으나 마나한 보안과장의 강연이 시작된다는 소리였다. ‘도주는 자멸의 길이다!’는 보안과장의 강연을 듣기 위해 반원들과 함께 강당으로 나갔다.

아니나 다를까 강당 앞에서 보안과장이 일장 연설을 준비하고 있었다.

“지금부터 ‘도주는 자멸의 길이다!’는 제목의 강연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셨습니다. 나라와 인민 앞에 죄를 짓고 개전 생활(잘못을 뉘우치고 마음을 다잡을수 있는 생활)을 하는 수용자들에게 있어서 노동은…….”이라며 말을 뗀 보안과장은 무려 2시간 반 동안 연설을 이어갔다.

보안과장의 말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죄인들의 괴로움은 더해 갔다. 허리는 끊어지는 것 같았고 엉덩이뼈가 배겨서 이마에는 식은땀이 흘렀다.

이 정적을 깨고 교화과장의 욕설이 울려 퍼졌다.

“보안과장 선생이 여기 나와서 말하기 좋아해서 너희 짐승 같은 새끼들에게 입 아프게 연설하는 줄 알아? 개 같은 새끼들이 말이야.”

교화과장은 졸고 있던 한 죄인을 일으켜 세워놓고 악에 찬 욕설을 퍼부었다.

총성으로 시작된 그날 하루는 길고도 길었다. 오후 내내 강당에 앉아 있던 우리 죄인들은 후다닥 저녁식사를 마치고 다시 ‘사상 학습’시간을 갖게 되었다.

당시 나는 벌목방에 전방된 지 세 달밖에 안 된 신참 죄인이었기 때문에 학습시간에는 큰소리로 김정일 명언을 외쳐야 했다. 고참 죄인들은 그저 입만 뻥긋거릴 뿐 소리는 내지 않는다. 나도 나중에 조장이 되고 나서는 학습시간에 입만 뻥긋했다.

나는 감방 벽에 붙어 있는 명제카드를 응시하며 입을 뻥긋거렸지만 아침에 목격한 도주자의 사형 장면에 정신을 빼앗기고 있었다.

취침구호와 함께 자리에 누워서도 쉽게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내 머릿속에는 ‘절대로 도주하지 않고 끝까지 살아 나가야 한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반드시 살아 나가서 어머니를 만나야 한다고 다짐했다.

교화소에서 아무리 총으로 쏴죽이고 입 아프게 연설을 해도 해마다 2~3명이 도주를 시도했다. 그런데 그 이후로 도주자에 대한 총살이 없어졌다.

도주자는 사형이 아니라 무조건 남은 형기를 포함해 교화 15년형으로 형기가 늘어났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이것은 리인모 노인 덕이었다.

비전향 장기수 리인모는 한국 사람들도 잘 알 것이다. 그는 한국에서 34년간 감옥 생활을 하다가 조선으로 돌아왔는데, 몇 개의 교화소를 돌아보고는 “나 같은 사람은 이런 곳에서는 34년이 아니라 3년도 견디지 못할 것”이라고 중앙당에 보고했다고 한다.

그의 보고 덕분에 그때부터 전거리 교화소에서 사형당한 도주자는 없었다. 여기서 리인모 노인의 말을 놓고 보아도 조선 교화소의 실태가 얼마나 잔인한가를 알 수 있다.

그래도 리인모 노인이 방문했던 교화소라면 감출 것은 감추고 사전에 잘 꾸며 놓았으련만, 그 정도마저도 34년간 감옥 생활을 한 리인모 노인에게는 큰 충격이었던 것이다.

인간을 쥐처럼 먹이고 소처럼 일시키며, 짐승만도 못한 존재로 인식하는 조선의 교화소야말로 지구상에서 인간의 자유와 인권을 갈망하는 모든 사람들의 비난과 저주를 받아 마땅하다.

(다음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