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난민인권연합
자유게시판
home > 자유게시판 > 탈북수기
 
작성일 : 12-07-30 13:45
탈북수기] 떠나온 고향풍경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2,947  
[탈북수기] 떠나온 고향풍경
김옥금

1. 나는 악몽 속에서 살아나왔다.

“야, 옥금아 니 뭐했니?”하는 친구의 고함소리에 눈을 번쩍 떴다.
손에 꼭 움켜쥐고 있던 배낭끈만 달랑 남아있고 배낭은 없다.

내 전 재산, 아니 우리집식구 명줄인 장사배낭이 없어졌다. 정신이 들면서 “이게 어떻게 된거지?”하고 친구한데 되물었다. “배낭 어디 갔냐구?” 명옥이가 소리를 질러댄다. 할 말이 없다. ...

친구가 기차 언제 들어오는지 알아보러간다며 나가고 대합실 한쪽에 쭈그리고 앉아있던 나는 잠이 들어버리고 그사이 도둑맞은 것이다.

며칠을 기차 기다린다고 역에서 지내면서 잘 자지도 못하고 하다가 나도 모르게 깜박 잠이 들었다. 어느 구석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었던지 전문 배낭털이 도둑들이 그 찰나를 놓치지 않고 일을 벌인 것이다.

말로만 듣던 배낭털이를 내가 진짜 당할 줄이야. 배낭끈을 손에 칭칭 감고 손에 꽉 쥐고 있었는데…….

“어떻게 하지?” 그 순간 내 머리 속에는 “제발 이거 날려먹으면 안 된다. 손이 발이 되게 빌어서 꾼 돈이다. 알았지?” 라고 신신당부 하시던 엄마 얼굴이며 돈 내놓으라고 집을 난장판 만들 사채꾼들의 모습이 휙휙 지나간다.

인정사정없는 사채꾼들의 횡포를 우리식구들도 당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앞이 캄캄하다. “아~~악” 미칠 것 같다.

멀고먼 함경북도에서 자강도까지 우리고장에 없는 고구마 장사 한번 해보자는 친구의 말을 듣고 큰마음 먹고 빌린 돈인데 이제 어쩐단 말인가? 친구가 뭐라고 계속 고함에 가까운 목소리로 말하지만 귀에 안 들린다.

사채꾼들 앞에서 쩔쩔 매며 사정사정 해야 될 걸 생각하니 죽고 싶다. 어디 돈 나올 데라도 있으면 돈 갚을 날짜를 미뤄달라고 부탁이라도 하겠지만 하늘이 두 조각이 나지 않는 이상 돈은 먹고 죽으려고 해도 나올 데가 없다.

그보다 이거 하나 믿고 내가 장사 갔다 오면 갚아준다고 지금 외상으로 식량을 해결하고 있을 집식구들 생각하니 기가 막힌다. 우리 엄마는 졸지에 사기꾼이 되는 것이다.

미친 듯이 대합실 안을 휘저으며 “내 배낭 못 봤습니까?” 물었지만 사람들은 “이거 미친년 아냐?” 하는 눈초리로 나를 쳐다보고는 휙 돌아앉는다. 모두 자기 입에 거미줄이라도 안 쓸게 하는데만 전념하다보니 나 같은 애가 배낭을 잃어버리던 말든 옆에서 사람이 죽어나가도 거들떠도 안 볼 사람들 같다.

대합실 안에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데 누구 한 명이라도 봤으련만 말해주는 사람은 더구나 없다. 만약에 말해줬다가 도둑들 한데 보복이라도 당할까봐 두려운 것이다. 나도 그런 것을 본적이 있었다.

자강도로 갈 때 기차 안에서 있은 일이다. 기차가 터널을 통과하느라고 캄캄해졌을 때 누군가 여자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악”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보이지 않았다. 터널을 통과하고 훤해지자 얼굴에 피가 줄줄 흐르는 한 아주머니가 울고 있었다. 아주머니는 양쪽 눈썹 위에서부터 턱 아래까지 서너 갈래로 찢어진 얼굴에 피가 낭자하게 흐르고 있었다.

끄덕끄덕 졸던 사람, 뭔가 심각하게 고민하며 생각에 빠져있던 사람, 배고프다고 우는 애를 무작정 업고 둥둥하며 달래던 여자, 열차 방통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목을 빼들고 여자를 보고 있었다.

모두 눈이 휘둥그레지며 서로서로가 영문을 모르며 두리번거렸다.
“뭐지? 무슨 일이지?”하며 나도 친구의 손을 꼭 잡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데 콩나물처럼 빽빽이 서있는 사람들 틈을 비집고 30대로 보이는 한 사내가 지나가며 “그러길래 주둥아리 건사 잘 해야지.”하고 말했다. 그것도 아주 뻔뻔하고 당당하게…….


그제야 사람들이 웅성이며 사건의 전말을 수군대기 시작했다. 전날 화성역에서 기차가 멈춰있을 때 한 아낙이 돈을 잃어버렸다고 고함을 지르며 찾아다닐 때 소매치기 장면을 목격한 지금 피 흘리는 아주머니가 자기가 본 것을 얘기해주었다고 한다.

그것 때문에 아주머니는 지금 보복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면도칼 날을 네 손가락 짬에 하나씩 끼우고 그 손으로 사람의 얼굴을 한번 쓱 쓸어주면 저렇게 가혹한 참상이 벌어진다. 이것이 북한사람들의 생활상이다.

너무나도 비인간적이고 상상을 초월하는 강도들이 득실거리고 양심과 도덕을 어느 쓰레기통에 팔아먹고서야 살 수 있는 곳이 지금의 북한이다.
인민을 위한 나라, 인민이 주인 된 나라를 만든다는 김정일의 정책이 지금의 북한을 만든 것이다.
2. 나는 악몽 속에서 살아나왔다.

숨이 콱 막힌다.
바닥에 풀썩 주저앉아 엉엉 울며 “내 배낭 좀 주시오”하고 애원을 하지만 들어주는 이도 없고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 온갖 후회가 밀려온다.

친구가 처음 장사 제안을 했을 때 듣지 말았으면, 그냥 열심히 농장일이나 나갔으면 가을에 쥐꼬리만 한 분배라도 탈걸, 아니면 누구 남자라도 하나 같이 왔으면 짐이라도 지켜주지 않았을까? 별의별 후회가 다 온다.

그렇게 한참을 울고불고 요동치고 나니 온몸이 다 땅으로 잦아드는 것 같다. 돈 아낀다고 전날 저녁에 두부밥 하나씩 사먹고 하루 종일 굶은 데다 울기까지 하고나니 그야말로 녹초가 된다. 그러다가 또 잠이 들었다.

꿈이다.
시장에 갔더니 “오늘만 공짜”라는 팻말이 붙여져 있고 떡장수, 사탕장수, 꽈배기장수, 암튼 모든 먹을거리장수들이 웃으며 천사 같은 얼굴로 사람들한테 공짜로 음식을 주고 있었다.

이게 웬 횡재인가 싶어 나도 정신없이 들어가 먹어댔다. 한참 먹다가 아차 엄마도 데려와야지 하고 돌아서 나오다가 누군가의 발에 탁 걸려 넘어지며 눈을 떠보니 현실은 공짜 떡은 커녕 공짜 물도 없는 세상이다. 눈물이 나온다.

또 다시 울기 시작했다. 울어도 울어도 끝없는 눈물.
그때 어떤 배가 불룩하게 나오고 얼굴에 기름이 번지르한 사내가 내 시야에 들어왔다. 딱 보니 간부다. 옆에 간부가방 하나 들고 거들먹거리며 역사무실로 들어간다.

들어가서 차 시간을 알아보는지 역장인 듯 한 사람과 몇 마디 하더니 다시 나와 대합실을 빠져나간다. “저런 간부들은 얼마나 좋을까?” 부러운 생각이 든다. 그러다가 가만히 생각해보니 화가 치밀어 오른다.

나도 여기 장사 오기 전까지 하루 11시간이상씩 농장 일에 충실했고 정말 내가 우리나라의 쌀 창고를 책임졌다는 자부심으로 열심히 일을 했다.

봄에는 허리 부러지게 논에 모를 냈고 여름엔 처녀손이라 믿기지 않을 정도로 손바닥 전체가 굳은살이 박히도록 호미질을 했고 가을에는 한 알의 낟알이라도 흘릴세라 정성들여 벼를 베고 겨울에는 또 더 좋은 퇴비를 생산하려고 남의 집 변소 똥까지 도둑질해가며 열성분자 명단까지 올랐다.

하지만 사회주의 분배원칙에 따른다는 명목 하에 내 앞에 차례진 분배량은 실로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였다.

일년내껏 일한 대가란 우리 네 식구가 한 달 정도 먹을 수 있을 만큼 너무 적은 양이였다. 현금으로 나온 분배돈은 바로 통장에 들어간다며 빈껍데기 통장만 준다. 5년 동안 빈 통장만 받고 나라사정이 어렵다는 구실로 돈은 일전도 받아보지 못했다.

결국 그 돈은 농장 관리일군들이 드셨겠지? 아니면 김정일이 먹었을까?
나는 하루 두 끼 겨우 죽을 먹으며 한 끼에 5개의 삶은 감자 먹고 한 시간 뒤에 화장실 한번 가면 속이 텅 비는 그런 생활을 하며 피땀 흘려 번 돈이건만. “왜 이런 거지?

왜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은 점점 더 가난해지고 하루하루 먹을 식량걱정을 해야 되고 저런 간부들은 왜 저렇게 기름이 번지르르하게 잘 사는 거지?” 하지만 그때까지도 나는 왜 그래야만 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그냥 원래가 그런 법 인줄알고 살아야만 했다.

이틀 후 드디어 기차가 들어온다는 소문이 대합실에 쫙 퍼지고 사람들은 술렁이며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다 잃어버리고 빈 몸이 되었지만 그래도 집에는 가야하기에 나도 친구도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출입구를 빠져나왔다.

얼마 뒤 기차가 들어왔다. 수백 명 사람들의 기차 탑승전쟁이 시작되었다. 입구부터 시작하여 어디라 할 것 없이 사람 천지다.

힘 센 남자들은 입구에 앉아있는 사람들을 마구 짓밟으며 올라가고 애를 업은 아줌마는 앞에 올라가는 남자들의 뒤꽁무니를 꽉 움켜쥐고 악을 쓰며 앞사람들처럼 앉아있는 사람들을 마구 짓밟고 올라간다.

그렇게라도 올라가면 다행이지만 힘이 없어 그렇게도 못하는 사람들은 길 내라고 고함만 질러대다. 완전 아비규환이 따로 없다.

입구에는 사람들이 꽉 막혀있어 아예 탈 엄두도 못 내고 유리가 다 깨져 비닐박막으로 막아놓은 창문 쪽으로 가서 돈 받고 태워주는 사람에게 우리 밥까지 굶어가며 아껴두었던 돈을 주고 창문을 통해 열차에 올랐다.

하지만 발을 옮겨 디딜 수도 없다. 콩나물시루도 이것보단 빽빽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겨우 창문턱에 손을 짚고 발은 의자에 한발만 걸치고 한 발은 공중에 뜬 채로 기차가 출발했다.

그런 채로 한 여덟 시간이 지난 후에 겨우 바닥에 발을 디딜 수 있게 되었고 그나마 바로 서서라도 갈수 있게 되었다. 두 발을 바닥에 붙이자 이제 살 것 같다. 그동안 깜박하고 있던 잃어버린 배낭 생각에 또 가슴이 답답해진다.

어느덧 캄캄한 밤이 되었다.
전등 하나 없는 열차는 오로지 달빛으로만 자기가 태우고 가는 춥고 배고프고 화장실 가고 싶어도 발을 옮길 수 없어 이 악물고 참으며가는 모든 사람들을 기억시키며 힘겹게 달렸다.

한참을 달리던 기차가 갑자기 “삐이익~~~~~~~”하고 급정거를 하는 것이다. 간신히 서있던 사람들이 기차가 달리던 방향으로 약속이나 한 듯 쓰러졌다. 또다시 고래고래 욕설이 터지고 저저마다 목청껏 “뭐야?” 하고 질러댄다.

(계속)

김옥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