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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2-09-22 10:52
북한 강제송환, 그 고통 - 수기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2,835  
기억하기조차 싫은 북한 감옥생활이다.
 

탈북 후 연길에 계속 머무르던 중 연길 변방부대(국경 경비대)의

단속에 걸려 체포되었다. 미국 화폐와 소지품은 압수되었고 다음

날 중국 지린성 화룡 감방으로 이감되었다. 화룡의 변방부대 감방

은 북한 탈북자들만을 체포하여 북한에 강제송환하기 직전까지

구속시켜 놓는 곳이다.

감방은 5개정도 되고 한개 감방의 크기는 3평 정도이다. 감방마

다 CCTV가 장착되어 탈북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빠짐없이 감시

했고 감방 문도 이중 삼중으로 닫혀 있었다.

감방 안의 4면에는 탈북자들이 써놓은 낙서들로 원래 벽면의 색

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강제송환 직전에 탈북자들이 써놓

은 낙서들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었다.

‘개혁 개방만이 살길이다.’ ‘난 이제 조선에 가면 죽을 것이다. 그

러나 두렵지는 않다.’ ‘마지막으로 어머니가 보고 싶다.’ ‘여기 중

국 사람들의 말을 믿지 말라. 그들이 우리를 조선에 송환시키지

않겠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나는 이제 조선에 가면 살길이 없다.

기회만 닿으면 또 다시 탈북 하겠다.’ 등 이었다.

옆방에서는 밤마다 어머니를 부르는 북한 여성의 울음소리가 끊

이지 않고 들려 왔다. 화룡 감방에 구속된 다음날 이곳 변방부대

책임자인 듯한 사람이 나를 심문하였다.

나는 감방 벽면에 쓰여 있던 ‘여기 중국 사람들의 말을 믿지 말라.

그들이 우리를 조선에 송환하지 않겠다는 것은 거짓말이다.’라는

문구를 읽었지만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 책임자에게 “나를 북조선에 보내면 나는 죽는다. 죽는 사람 살

리는 셈치고 나를 송환하지 말아 달라”고 거듭 호소하였다.

그 책임자는 나의 말을 듣더니 “우리도 당신들이 북조선에 가면

혹독한 환경에 처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가능하면 보내지 않으

려 한다. 당신을 북조선에 보내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그

거짓말은 우리 모두를 북한에 송환할 때까지 계속 되었다.

그곳에 수용된 북한 사람이 십여 명이 넘었을 즈음 중국 변방부대

에서는 탈북자들을 모두 족쇄로 연결하여 묶고는 범죄자를 이송하

는 전용 버스에 태워 북한에 송환하기 위해 북한의 국경도시 무산

으로 향하였다. 그때의 심정은 북한에 강제송환 되어보지 않은 사

람은 절대로 모를 것이다.

다시는 돌아오고 싶지 않았던 북한에 그것도 족쇄에 묶여 앞날을

조금도 예측할수 없는 정치범의 처지로 북한 보위부에 넘겨진다

고 생각하니 미칠 것만 같았다. 우리들 탈북자들을 기다리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할 고통이었다. 이송 절차를 거치는 동안에도 머리

를 땅에 박고 있어야 했고 입에 담지 못할 욕설과 뭇매를 당해야

했다.

이송절차를 마치자 우리는 무산 안전부 감방으로 끌려갔다. 무산

군에는 보위부 감방이 별도로 없기에 시나 도에 넘기기 전에 임시

로 안전부 감방에 수용된다. 무산 감방에 들어서자 계호원(간수)

들은 우리의 기를 바로 들인다면서 무작정 구타를 가했다. 이 피

를 말리는 구타는 일행 중 한 명이 피를 토하며 쓰러질 때까지 계

속되었다.

10개의 원형이 마주 보도록 만들어진 무산 감방은 5개의 감방을

탈북자 전용으로 수용하고 있었다. 3평 남짓한 좁은 감방에 25명

정도의 탈북자들이 감금되어 있었다. 밤에는 너무 좁아 사람 위에

사람이 겹쳐서 쪽잠을 자야만 하였다. 음식물로는 강냉이 겨로 만

든 가루와 싯멀건 소금물이 전부였다. 예심이 끝나지 않아 6개월

가량을 그 곳에 갇혀 있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그들의 모습은 너무

도 앙상하여 흡사 해골을 보는 듯했다.

무산에 온 다음 날부터 보위부의 심문은 계속되었다. “남한 사람

들과 접촉하지 않았는가? 최종 탈북 목적지가 어디인가?” 등이

집중적인 심문이었다. 살길은 오직 미국 친척들에게 돈을 얻어

다시 북조선에 돌아 오려했지 3국으로 달아나려는 생각은 없었다

고 끝까지 우기는 것이었다.

감방 안에서는 하루종일 다리를 포개고 앉아야 했다. 조금만 움직

여도 기합을 받아야 했으며 맨땅에 무릎을 대고 몇 시간 동안 있어

야 했다. 그러다가도 계호원(간수)이 자리를 비우면 서로 어디서

잡혔는지 정보를 교환하며 살아서만 나가면 다시 탈북할 생각들

을 하고 있었다.

탈북자들도 국경지대에 사는 사람들과 북한 내부 출신들과는 상당

한 차이를 두어 취급하였다. 국경지역 사람들은 1개월 정도 예심을

받고 다른 의심되는 점이 없으면 석방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내부(국경지역 외의 지역)에서 탈북한 사람들은 조국 반역자로 몰

아 정치범 수용소로 가는 경우가 허다하였다.

많은 탈북자들이 자유를 찾아, 혹은 굶어죽지 않기 위해 북한을 탈

출하였다는 죄 아닌 죄로 그 악명 높은, 살아나오기 힘들다는 정치

범 수용소로 끌려갔다. 무산 감방에 갇힌 지 10일 정도가 지났을

무렵 나는 거주지가 평양시이기에 평양시 보위부로 인계되었다.

평양시 보위부 감방은 1층과 2층으로 되어 있었는데 1층에는 예심

중인 사람들이, 2층에는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갈 사람들이 갇혀

있었다. 보위부 감방은 일단 갇히면 친인척은 물론 그 누구의 면회

도 허락되지 않으며 그 곳에서 죽어도 어디에 하소연 할수도 없는

곳이었다. 1층 감방에는 20개 정도의 감방이 있었는데 한 감방에

보통 6~7명의 정치범들이 갇혀 있었다.

그들의 ‘죄목’도 다양했다. 독서회라는 조직에 연루되었던 사람들,

북한의 사회주의 체제에 반하는 청년조직 가입자들, 북한 사회는

미래가 없다고 말하다 잡혀온 대학 교수 등 가지각색의 직종과 죄

목을 가진 사람들이 잡혀와 있었다.

감방에서는 사람들끼리 절대로 말하지 못하게 하였다. 감방사람들

속에서는 나와 같은 탈북자도 세 명이나 되었다. 러시아 시베리아

에서 벌목공으로 있다가 붙잡혀온 탈북자도 있었고 중국의 수도

베이징까지 갔다가 체포조에 붙잡혀 온 사람도 있었다.

또 외국에 가보지도 못하고 탈북 하겠다는 말을 주위 사람들에게

했다가 고발 당하여 붙잡혀 온 불운의 젊은이도 있었다. 나와 같은

감방에는 70세 노인도 있었다. 그는 영양실조에 걸려 거의 죽어가

고 있었으나 일체의 어떤 치료도 해주지 않았다.

감방에는 수용소에 가기 싫어 바늘과 젓가락 등을 스스로 삼켜버

린 사람들도 몇 명 있었는데 그들이 아무리 복통을 호소해도 어떠

한 조치도 취해지지 않았다. 1층에서 예심이 끝나면 참관인 한 사

람도 없이, 또 변호사도 없이 보위부 사람들에 둘러싸여 형식적인

재판을 하고는 형량을 지워 ‘죄목’에 따라 정치범 수용소나 일반

교도소 등에 보내어진다.

감방 안의 한 사람이 우연히 반체제 청년 조직 가입자들이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가는 광경을 보았는데 어찌나 예심기간동안 시달렸

는지 온전히 걸어서 나가는 사람은 거의 없고 시체처럼 실려 나갔

다고 했다.

나는 탈북 전에 독일작가 루이저 린저의 ‘옥중 실기’라는 책을 읽

었다. 그 내용을 보면 히틀러도 자기 민족에게만은 오늘의 북한에

서와 같은 악행은 저지르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김일성이

일본 경찰과 중국 만주 군벌에 붙잡혀 감옥 생활을 한 것을 회상

하여 쓴 글을 보면 일본제국주의도 또 만주군벌도 오늘의 북한의

보위부 감옥같이 참혹한 비인간적인 행위는 행해지지 않은 듯

싶다.

북한에 살아보지 않고는 북한의 반인간적인 모습을 알 수 없을 것

이다. 보위부에서는 간수를 초병이라 불렀다. 그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감방사람들을 죽도록 구타했으며 우리를 사람이 아니라 짐승

취급하였다. 밤에는 정치범 수용소로 가게 된 사람들의 신음소리

로 잠을 잘수조차 없었다.

기억하기조차 싫은 북한 감옥생활이다. 한국으로 오는 동안 나는

연길, 심양, 장춘, 베이징, 상해 등 중국 각지를 헤매고 다녔고 베

트남과 미얀마 등지도 헤매고 다녔다. 나는 가는 곳마다 탈북자들

의 눈물과 비애를 뼈아프게 느껴야 했으며 나와 같은 탈북자들의

눈물에 젖은 행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남북 최고 당국자들이 서로 만나고 남북 경협도 점차 확대되고 있

다. 그러나 그 그늘에 묻혀 탈북자들의 생사존망이 외면되는 일이

있어서는 절대 안 될 것이다. 이 시대 가장 비참한 처지에 빠져 있

는 탈북자들, 그들에 대한 세계의 모든 뜻 있는 사람들의 관심과

애정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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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호 14-11-06 02:49
 
솔직히 북한은 생지옥입니다.한번도 가보지 못한 북한이지만 관련정보들을 접하니까 느끼는 거지만 제가 그런 곳에서 태어나지 않은 것이 다행이기는 하지만 인권을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북한주민들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50만명만 남더라도 그 나라는 유지가 된다고 할 때 아예 1950만명이 탈북했으면 좋겠습니다.
lamed 16-01-25 14:51
 
남한 사람으로서 북한에 관심이 많아서 오늘 김용화씨 관련 기사가 실려서 어떤 곳인가 하고 왔다가 흥미로운 곳 이곳 저곳을 보면서 몇자 적어봅니다... 탈북자가 시작된 이래 약 3만여명에 이르기 까지 남한에서는 탈북자에 대해 여러시각이 존재했던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같은 한 민족으로서 당연히 탈북하신 분들의 남한정착에 대해 환영하는게 대부분 남한분들의 생각입니다.. 다만 사회 부적응자들중 스스로 못난것은 생각지 않고, 이것을 탈북주민이나 다른 곳에 그 이유를 대는 정신 이상자들도 있는게 사실입니다.  그런것에 전혀 신경을 쓰시지 않는게 좋습니다.  자본주의 국가는 근간이 개인생활, 개인의 생각을 중요시 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국익이 우선되는 북한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이해못할 일이지만... 실제 자본주의 장점이 열심히 사는 개인에게는 훨씬 많답니다.. 공산주의는 특권 특수 일부분 계층만 잘 살수있도록 되어 있는 사회이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도 비슷한 경우가 있지만, 집단이기주의가 팽배한 집단일 경우에 종종 비슷한 현상을 경험할 수있습니다.. 무엇보다 북한사회는 많은 주민들이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일가에게 속아서 살고 있다는게 사실 남한 주민으로서 이해가 선뜻 가지 않았으나, 조직적이고, 치밀한 계획아래 60여년간 지속되어온 독재가 결국 북한주민을 세뇌시켜 버렸다는데 이해가 갑니다.  남한주민으로서 통일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의견이 있다는것을 말씀드리고 싶네요.. 가장 큰 이유는 남북한이 이미 하나가 되기 어려운 사상적 갭이 너무 크다는데 있습니다.. 막상 통일이 되어도 여러분들처럼 일찌기 탈북하셔서 자본주의를 경험한 분들은 통일이 주는 기쁨과 가족상봉의 기쁨이 무엇보다 크겠지만, 너무 오랫동안 멀어져 버린 생각이 하나가 되기에는 많은 부작용이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의 속성이 좋은것 편한것만 찾기 마련인데, 놀고 먹어도 국가에서 모든것을 제공해주는 공산주의 이론의 좋은점과 (이론뿐 이지만) 경쟁과 노력을 통해서만 그 열매를 따먹을 수있는 자본주의의 사상이 서로 상충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남한 사회에서 무엇보다 여러분들이 살아왔던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속성의 다른점을 잘 연구하셔서 이런 점들을 만약 나중에 통일이 되어서도 여러분들이 나서서 북한주민들을 개화 시키고 설득시킬 수있어야 참다운 통일이 가능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통일이 되건 안되건 문제가 아니라 차라리 양쪽의 체제를 서로 인정하고, 인적교류와 물적교류만 가능하도록 하도록 하는 소위 고려 연방제가 고려될 수도 있을것입니다..  여러분들중 상당수의 젊은층들이 아직도 남북한 주민 어느곳에도 속하지 않은 정체성 혼돈상태라는 유튜브를 가끔 보면서 걱정을 하는 남한 주민들이 많답니다..  이유는 그렇게 사상의 갭을 메꾼다는게 쉽지 않다는것을 입증하는 사례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인간의 본래적 생리입니다.. 내가 좋은대로 생각하고, 보이는대로 판단할 수밖에 없는 생래적 본능때문...  탈북주민 모든분들이 서로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열심히 자신이 하고싶은 것을 찾아서 꿈을 성취할 때만 훗날 모든 고생한 경험들이 추억이 되고, 다른 북한에서 사람다운 삶을 살지 못하면서 사람처럼 살고있다고 착각하고 살고 있는 북한주민들에게 인간으로서 참 행복과 복을 누릴 수있는 삶을 살수있도록 도와줄 수있을것....  우리 남한도 군사독재시절에는 똑같은 경험을 했답니다.. 다만 국민들이 들고 일어나서 군사독재체제를 무너뜨리고 오늘날 자유대한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과거 군사독재시절 미국으로 유학가서 첫번째 기뻣던게 물질의 풍부함도 아니고, 자동차를 모는것도 아니고, 자유의 나라에서 마셔보는 "참자유의 공기" 였던것이 생각나네요.. "자유" 라는것만큼 인간에게 큰것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