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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2-11-25 17:46
어느 탈북자의 수기 북한의 종교 탄압 (퍼온글) 1
 글쓴이 : 72128pp
조회 : 4,949  

북한의 종교인 탄압

 

한국 귀순후 느낀것인데 종교계에서 북한의 지하교인이 몇 명이고 얼마를 선교시켜서 북으로 파견햇느니.몇명의 지하교인이 생겻느니.그교인들을 언제부터 어덯게 처형시키고 어쩌고, 저쩌고 복잡하다.

얼마 전에 미국의 풀러 신학대학원 이반석 목사의 논문을 잠간 보았다.

내가 몰랐던 북한의 지하교회 실태에 대하여 놀란 부문도 많았다.

물론 100% 마음에 와 닿은 논문은 아니다.

아쉬운 부문도 있다.

그리고 서로가 서로를 물어뜯는 식의 비난도 좀 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의 종교인들이 흔히 북한에 대하여 말할 때면 김일성도 기독교인이였고, 김일성의 집안도 기독교인이였다고 한다. 마치나 그 시절에 그 사람들과 함께 목회를 한 듯이 말이다.

또한 김일성이 죽은 후 그의 유물에서 성경책이 나왔다고 마치나 저들이 본 듯이 말한다.

한국의 그많은 종교인들중에. 그리고 한국의 수많은 탈북자 중에 김일성이 죽은 후 사물함에 든 성경책을 직접 확인한 사람이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라.

세상이 참 더럽고 치사한게 종아리보고 뭘 봤다고 해대는 것이다.

말이 아무리 굴러가며 보태진다 하나 도를 넘겨도 너무 넘겨서 말조의 세상인 듯 싶다.

가상적으로 예측하여서는 마치나 그것이 사실인 듯이 부풀려지고 또 부풀려서 그렇더라.

입 가진 사람이면 전부가 6.25 참전자인 듯싶고, 입 가진 사람이면 전부다 김일성의 전우이고, 같이 교회 다닌 듯이 생동하게 엮어 댄다.

제발들 좀 그러지들 말았으면 싶다.

특히는 한국에 와서 말이 많은 북한인들!

본것은 본것대로만 들은 것은 들은 것대로만, 못 본 것은 못 본 것대로... 좀 처신들 바로 했으면 좋겠다.

궁금한게 있다. 지하교인에 대하여 이렇고 저렇고하는 사람들 중에, 실제로 북한의 지하종교인을 상대해본 사람 있나?

그런 종교인을 국가의 지시로 처형해본 사람있나? 아니 처형하는 것을 먼발치에서나마 본 사람조차 있나?

그 어떤 반박이나 또 어떤 감정으로 그네들의 주장을 콩이야, 팥이야 하자는 게 아니다.

이글이래도 남기려고 하는것은 하도 지하교회 어쩌고 말들이 많고, 오늘날까지도 사실이냐 어쩌냐 떠들어대고 참 사람들이 한심해도 너무 한심하고 북한에 대하여 전문가들 모양을 떠는 사람들까지도 그 모양새인가 싶어 쓰려는 것뿐이다.

내가 이런 소리 하면 또 헛소리들이 많겠지? 특히나 북한인들은. 그 입들이 더럽고 무섭다.

받아들일 사람은 받아들이고 말 사람은 말라지.

아쉬운 점이라면 처형된 교인들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어떤 이유로 누가 처형되였는 가를 그 어느 누구도 정확히 밝히지 못했다는 것이다.

긴 논문을 쓴 목사분도 북한에서 자신이 직접 체험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실적 확인 부문에서는 당연한 것이겠지만 조금만 북한의 사실 확인을 위한 것에 깊이 접근한다면 확실한 자료들을 얻었을 것이였을텐데 그게 좀 아쉽다.

물론 나처럼 귀순후에도 목을 내대고 북한으로 드나드는 무리를 범하지 않는 이상에야 쉽지 않을 것이지만 방법은 무한정 아니겠나?

정말로 종교 탄압에 대한 확실한 자료를 얻으려 한다면... 이것에 대해서는 그만 두자.

목사가 용병이 아니고 전투인이 아니고 테러리스트가 아니고, 전문교육을 받은 사람도 아닌데 당연한거 아니겠나.

지금 지하교인 실체에 대해서는 한국이나 종교계에선 벌써 96년부터 알려졌다고들 한다.

그런데도 아직도 심지어 존재여부, 사실여부에 대하여 이러쿵 저러쿵 말들만 늘여 놓고 있다.

물론 체포된 여러 교인들은 어떻게, 어느 시기에 처형되였는지 알려진 것도 없다.

나 하나가 북한 전역에서 처형되고 감옥에 끌려가고 등 탄압을 받은 그 사람들에 대하여 전부 확인한 것도 아니다.

또 무당과 같은 미신 때문에 죽어가고 감옥에 간 사람들까지 지하교인으로 둔갑시킨 종교계의 대변론자 들에게 일일이 이해를 시키자는 것도 아니다.

북한의 종교 실태에 대하여 구구 절절히 설명하자는 것도 아니다.

여기에 쓰려는 건 몇 사람뿐이다.

나는 무신론자다.

종교를 믿으면 미친 사람으로, 나라의 정치에 역행하는 민족 반역자로 낙인하여 탄압했던 사람 중의 한사람이었다.

그러던 내가 지금 그 종교인들과 한 하늘 아래에 살고 있다.

지금에 와서야 ,이제 자본주의 사회를 10여년 살고 나서야 믿는 사람들이나 나나 별다른 데는 없는 똑 같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느껴 간다.

특히나 여느 사람들과는 달리 일찌기 종교인들을 보아 왔고, 그들의 종교 행위에 대한 국가의 탄압에 동조해온 한 사람으로써 종교나 이념을 떠나서 개개인 인간으로써 이제는 이 세상에 없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먼저 용서를 바라는 마음이다.

내가 오늘 여기서 북한의 종교인 탄압에 대하여, 세상이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하여 또한 종교를 한다는 사람들. 더욱 특히는 북한 선교를 한다는 사람들 조차도 잘모르는 내가 보고 겪은 몇 가지에 대하여 밝힘으로써 인간의 탈을 쓰고 행하여진 북한의 종교인 탄압에 대하여 말하려고 한다.

나 같은 한 사람이 어찌 그 전부를 다 안다고 하겠는가?

북에 있을 때에는 그나마 김일성 사상, 주체사상이라는 것에 충실하여 10대의 어린나이에 북한 노동당에 화선입당을 한 열성당원이었다.

내가 이제는 해외에서 종교도 접하여 보니 북한의 주체사상도 어떤 종교적 신앙 비슷한 것으로 느껴지면서 그런 것에 내 정신과 청춘을 다 빼앗겨 온 것이 지금은 분하게 여겨지기도 하는 것은 사실이다.

솔직히 중국에 처음 왔을 때에도 종교를 믿는 사람은 다 정신이 이상한 사람들, 미친 사람들이거나 자신들의 인생을 살아가면서 허무하고 불쌍한 사람들, 정신적으로 나약한 사람들이라고만 여겨 왔다.

종교를 믿으며 떠받드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위와 같은 관념이라면 목사나 신부, 스님들은 전부 말재주가 좋아서 무식한 사람들을 종교에 미치게 하여 등쳐먹는 사기꾼이라고 생각하여 왔다.

많은 나이를 살아 온건 아니지만 북한에 살면서도 어떠한 관계로 여러 종교를 목격하여 왔다.

또 여러 나라들에서 기독교, 천주교, 불교, 통일교, 이슬람교, 힌두교 등 이름도 알 수 없는 수많은 종교인들을 보아 오면서 통상 내 고집적 견해가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모두 정신 나간 인간들이라고 느껴왔다.

어린 시절에 한창 정신력무장 즉 그네들이 말하는 빨갱이 정신으로 길들여져 가던 시기에, 내 인생을 배고픔을 넘기기 위한 것에 목숨 걸던 철모르던 시절 내손에서, 그리고 나의 동료들의 손에서 자신들이 소위 천국이요, 천당이요 하는 것에 목숨을 걸고 살았지만 결국에는 한을 품고 떠나간 여러 종교인들에 대하여 그들도 인간이요, 나도 인간이고, 그래서 인간이 인간에게 지은 죄에 대하여 늦게나마 사죄하는 마음에서 이름 석자도 남기지도 못하고 떠나간 그들의 명복을 빌면서 구천에서 떠도는 그들의 억울하고 불상한 영혼들을 위하여 삼가 명복을 빌면서 몇 자 적으려 한다.

또한 그 체제하에서. 그 상황 속에서, 나의 처지에서는 나 자체가 최대한의 충실성을 인정받아야 살아남을 수 있었기에 나의 본의가 아니었음도 알아 주셨음 하는 바램이다.

그냥 당시의 내가 겪은 상황에 대하여 그대로 밝히려는 것뿐인데 눈앞에 영화처럼 흘러가는 이것을 감히 내 글재주로 글을 남기기에는 너무 어렵다는 걸 안타깝게 느낄 뿐이다.

아쉬운 점이라면 처형된 교인들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어떤 이유로 누가 처형 되였는지를 한국의 그렇게 잘난 종교계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지하교인 처형설만 말하고 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한국에 간 수많은 탈북자 중 극소수가 종교 탄압에 대한 실상을 몇 가지 증언할 뿐이다.

지금 북한의 지하교인 실체에 대해서는 한국이나 종교계에선 이미 오래전에 알려졌다고 한다.

나 하나가 북한 전역에서 처형되고 감옥에 끌려가고 등 그 참혹한 종교 탄압에 대하여 전부 알 수는 없다.

물방울들이 모여서 강을 이루고, 강이 모여서 바다를 이루는 자연의 법칙처럼 나 하나뿐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이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 둘 그 실체들을 밝혀냄으로써 저 독재정권이 무너지기를, 하루 빨리 무너져 내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내가 겪은 당시의 사연 몇 가지를 적으려고 한다.

내가 처음으로 종교인에 대하여, 아니 처음으로 북한 정부에서 노동당을 음해하는 반당, 반혁명분자로서, 또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를 전복할 목적으로 파견된 간첩의 자식들을 마주한 것은 1987년이다.

당시 평남 00항 당 책임비서로 있던 자가 북파 잠복간첩으로 잠복 활동하다가 80년대 중반 한국의 지령으로 활동을 하다가 북한 보위기관에 체포되는 사건이 있었다.

그 사람에 대해서는 나 자체가 사건 관련자가 아니기 때문에 자세히는 모른다.

단지 그 사람의 집에서 성경책, 찬송가책, 그리고 십자가로 만들어진 목걸이식 악세사리 수십개가 나왔다는 것을 상급기관 군관(장교)들에게서 들었을 뿐이다.

그 시기 나 자체가 군관이 아닌 일개 하사관에 불과했고, 그 간첩이라는 사람의 두 아들 체포 작전에 직접 동원되어 그들을 잡아다 정치범 관리소에 넘겨주었을 뿐이다.

함남 연풍에 지어진 김정일 수중 특각(수중호화별장) 000초대소에서 군관으로 근무하던 맏아들을 보위사령부 2명의 군관과 군단 보위소대 하사관 3(본인까지)과 그 외 다른 군관 3명이 연풍특각에서 맏아들을 인계받아 지금은 없어진 관모 정치범관리소에 넘기였다.

(현재는 관모정치범 관리소와 온성군 종성구 동포리 정치범 관리소를 화성군 16호 정치범 관리소로 합치였다. 그리고 당시 그 지역을 인민군 담배농장과 백도라지농장으로 건설하였다.)

다음으로 둘째아들이 포병군관학교에서 근무하였는데 순천에 도착하여 학교에서 둘째 아들을 데리고 오면서 부친이 급 사망하였다는 급보를 전하고 장례에 가는 것처럼 속여서 출발하여 경성까지는 열차로, 나머지는 지프에 태워 몇 대 때려 기절시킨 후 자갈을 물리고 수갑을 채워 관리소에 도착한 후 인계하였다.

지금도 인계 당시의 상황이 잊혀지지 않는다.

관리소 정문에는 지금의 인민 보안성(그때는 사회 안전국) 대원들이 AK자동보총을 들고 삼엄한 경비를 서고 있었다.

지금도 정치범 관리소는 당시 국가 안전부 소속 현역 경비군인들과 보안성 소속 현역 경비대원들이 통상경비를 맡는다.

정문 오른쪽으로 30m밖에 초대소가 있다.

현역 군인인 우리도 관리소 안으로 들어 갈 수 없다.

우리가 도착하니 인민군 군복이지만 군모도, 견장도 없는 인원 4명이 정문에서 여러 서류를 넘겨받고 우리가 채워서 갔던 수갑을 풀어 돌려주고, 체포자가 입었던 군복, 군관 혁띠, 군모, 견장들을 카메라로 찍은 후 우리에게 돌려주고는 팬티만 입힌 채로 수갑을 채워 맨발로 데리고 관리소 안으로 사라졌다.

그 아들이 왜 죄 없는 자기를 잡아 오느냐 울부짖자 4명의 보위원이 아무소리 없이 다가와 달려들어서 그를 구타하니 단방에 입으로 피 흘리며 꺽꺽거리면서 찍소리도 못하고, 딩굴고, 쓰러진 그를 팔 하나씩 붙잡고 개처럼 질질 끌고 들어가는데 바라보는 우리 마음이 섬뜩하였다.

저놈은 제 애비가 간첩인줄도 모르고 억울하게 잡혀 가는구나 싶었지만 당시는 불쌍하다는 마음보다는 살벌한 그 현장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군단 사령부에서 배정받은 지프를 처음에는 내가 운전하다가 심장이 와들와들 떨려 산골길을 00읍까지 90리 정도를 내려 와야 하는데 도저히 운전할 자신이 없어 다른 친구에게 운전대를 넘겨주었다.

종교와 관련하여 처형된 사람을 내가 또다시 목격하게 된 것은 군관학교에 가기전이였는데 그때가 1986년으로 기억된다.

부대와 이름까지도 기억에 생생하다.

00사단 직속 측지소대 부소대장 상사 김00, 함북 청진 사구지구에 위치한 군단 포 사격장에서 공개처형하였는데 당시 공개적으로 밝힌 것은 그가 소대의 군인들에게 지급된 군복과 식량 등을 민가에 빼돌려 현금을 만들어 숨겼다는 것과 사회의 처녀를 사귀여 부화방탕한 사생활을 함으로서 군사 규율을 위반하였다는 죄명이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여 보아도 그리고 그 시기까지 인민군적으로 흘러온 역사를 보아도 그만한 죄라면 생활제대나 출당이 보편적 처벌인데 이정도 처벌만 받아도 그 사람의 정치적 운명은 영원히 매장되는 것이고 후대에까지 그 치욕을 남기는 엄청난 처벌인데 그렇게 공개처형까지의 엄중함이 아닌데 중앙당 시범에 걸렸다는 것이다.

공개처형식이 끝난 후 우리 소대에게 시신 수습명령이 내려져 가마니에 시체를 넣기 전에 단검으로 입은 군복을 주욱 찢어내고, 신발을 벗기고 알몸만 가마니에 넣은 다음, 군단 운수차에 실어서 한참 달리다가 외진 광산 버럭 더미를 헤치고 시체를 놓고 거기에 디젤유를 뿌리고 불 태워 버럭더미에 묻어 버렸다.

당시 외가켠 친척이 군단 보위부에 있어서 부대로 귀대하던 도중 친척집에 잠간 들리어서 물어 보았다<SPAN style="LETTER-SPACING: 0pt; FONT-FAMILY: 바탕; BACKGROUND: #ffffff; FONT-WEIGHT: bold; mso-font-wid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