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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1-09-02 13:23
거지나라 소녀의 비극
 글쓴이 : 일원동 (112.♡.166.107)
조회 : 3,673  
살기 싫은  사회주의 지상 낙원에서 부모님 들은 병 이 아닌 굶주림 으로
세상을 떠나시고.. 그 당시 제 나이는 15살 이였어요 부모님 이 돌아가신 후 시작된
거지생활..1년 장마당 에서 길거리 에서 땅에 떨어진 먹을수 있는 것은 모조리 먹었어요
거지가 하도 많다 보니 누가 우리 같은 꽃제비를 걱정 해주는, 챙겨주는 사람한명 없었어요.

힘이센 남자애들은 그래도 장터에서 훔쳐 먹다 매맞기도 하지만 매 맞으면서도 먹을것을
먹을수있는 힘센 남자 아이들이 부럽기도 했어요

중국만 넘어가면 거지라도 배불리 먹을수 있다는  소문이  나를 점점 유혹 하였어요
그래서..16살 되던해 두만강을 건너 중국 으로 넘어 왔지만 낯설고 언어가 안 통하는
중국에서 제가 살아 간다는것 은 너무나 힘들었어요.

어느날  중국 조선족이 저에게 하는말이 어디로 가면 편안하게 살수 있다는 유혹에 저는
그를 따라 갔어요 그날 처음으로 밥을 실컷 먹고 열차를 타고 어디론가 저를 데려 갔는데

하루 종일 열차를 타고 가다내린곳이 요녕성 어느 지역이 였어요 다시 택시를 타고,
어느 농촌 마을에 갔는데 그 집 에는 할아버지 같은분 있었고,  중국 조선족 은 그에게
중국말 로 무어라 하더니 저에게 이곳에 있으면 안전하게 돌봐줄것이라며  돌아 갔어요

그날 부터 나는 그 중국인의 성노리개로 처음으로 그가 시키는대로 할수밖에 없었어요 
조금만 거슬리면 때리고 발에는  쇠사슬로 된 족쇠를 차고  살아야했어요 그렇게  살기를
1년이지나  저는 임신을 했고  병원이 아닌 집에서 첫애를 출산했어요.
출산 후유증이 멎기도전에  다시 발에는  족쇠가  채워 졌는데  내가  달아나는 것이 두려웠던것 
이였어요. 
18세 되던해 둘째가  태여 나고서야  감시가 느슨해졌어요, 16살에  만난 그는 그때  나이가 
61살 이라는것도  후에  알았어요  19세 되던해 3째를  임신하면서  저는 두애는  버리고  탈출에 
성공하여  지금  고마우신분 들이  소개해준곳 에서 살면서  이제부터  라도 사람답게  살고픈 심정을 
이글을  통해 적습니다,  저같은  저같이 부모잃고, 갈곳없이 떠도는 우리 불쌍한  탈북자들을
도와주세요....!


이는  한 탈북소녀가  쓴 소설 같은 현실이다  지금도  3국에서  지옥같은  나날을  보내고 있는 
이들에게희망과  용기를  주어  그들이  독재자  김정일이  어떤 인간 인지를  만천하에  고하고!! 
국내 에서  외면당하는  북한  인권법 이  속히  이루어지길  기대한다.